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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신혼여행기

준비

결혼을 했다. 태어나서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죽고, 자신이 죽는 것으로 사람의 삶을 일반적으로 구분한다면, 나는 이제 딱 중간 단계를 시작한 것이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전 단계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이니 살았던 데로 살면 안 된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내 삶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마음먹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남들은 적어도 반년 전부터 결혼 준비로 바쁘다던데, 내 결혼 일정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일정에 쫓긴 것은 아니다. 남들이 하듯이 결혼식도 하고 신혼여행도 갔다. 좀 다른 점이라면 남들처럼 오랜 기간 준비하지 않을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린 신혼여행 일정을 출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확정했다.

왜 다들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지만 막연히 신혼여행은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신혼여행은 새로 시작되는 우리의 남은 여정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삶은 여행에 비유되고는 한다. 이생에 왔다가 돌아간다는 점이 어딘가를 갔다가 오는 여행과 비슷하기도 하고, 결항 통보같은 우발적인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여하튼, 신혼여행의 목적지 선택부터 이야기하면 될 거 같다. 나는 신혼여행은 보라보라로 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십 년도 넘게 가지고 있었다. 우연찮게 이름이 보라인 사람이 보라보라섬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었고 그곳에 대해 찾아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폴리네시아에 있는 보라보라는 갓 스물을 벗어난 나에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코로나 전이라면 보라보라에 갈 수 있었겠지만, 코로나 이후 항공권 가격은 내가 심리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한도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코로나 이전보다 비행기 가격은 거의 두 배가 되어있었다. 보라보라와 비슷한 성격인 휴양지인 몰디브 항공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육 년 전에 한국에서 러시아를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영국, 인도를 돌았을 때 들었던 교통비보다 몰디브 가는 교통비가 더 비쌌다.

결혼식 날짜도 정해졌지만, 신혼여행 일정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고 이래저래 시간만 흘렀다. 이러다가 신혼여행은 올해가 넘겨서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심심할 때마다 항공권 가격을 찾아보며 다양한 경로를 생각해 봤다. 몰디브나 하와이, 세이셸이나 모리셔스도 고려했다. 발리도 생각해 봤고, 그런데 모든 여정이 딱히 끌리지 않았다. 하와이는 산불로 시끄럽기도 했고 언젠가는 갈 날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직항편이 있는 발리도 심적으로 멀지가 않았다. 세이셸이나 모리셔스는 차라리 몰디브에 가는 게 나았다. 그래서 몰디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몰디브에 간다고 생각했을 때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생각했다. 환승 간격을 이삼일 정도로 잡아서 싱가포르도 한 번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항공권 가격에 입맛을 잃었다. 저가 항공사도 크게 꺼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몰디브 가는 길에 택할 수 있는 저가 항공사가 에어아시아라는 점이었다. 이 회사는 내가 기억하는 대형 사고만 두세 건이 된다. 또 여러 번 환승해야 하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다. 나 혼자 간다면 괜찮지만 일행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대안은 상하이를 경유하는 중국 동방 항공이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시간대도 괜찮았다. 그러나 동행의 취향은 중국과 너무 멀었다. 굳이 불쾌할지 모르는 기분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에티하드 항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부다비에서 환승하면 호텔을 2박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사막, 나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후이기에 끌렸다. 또 막대한 자본이 자연을 이기며 억지로억지로 만들어 놓은 도시 또한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항공권 가격이었다. 그렇게 가격을 살피는 중 항공권 가격이 꽤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고, 그간 알아보던 리조트도 포함해서 내 동반자와 함께 나흘간 숙고했다. 일정을 정하면서 양가의 김장일까지 신경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홀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일은 결혼식 바로 다음 날로 정하지 않았다. 아내는 출발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외당숙은 이 말을 듣고 그 정도로 서로 타협할 수 있어도 참 좋은 배우자라고 했다.) 그래서 결혼식 다음 주로 여정을 정했다. 일단 취소 가능한 리조트를 예약했다. 그리고 취소 불가능한 항공권을 구입했다. 여정은 “인천 – 아부다비 – 말레(몰디브) – 콜롬보(스리랑카) – 아부다비 – 인천”이다. 말레에서 아부다비 가는 항공편이 저녁이어서 좀 더 일찍 출발하는 콜롬보 환승편을 택했다. 콜롬보 환승 구간이 스리랑카 항공에서 운항하는 것이어서 살짝 고민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취소 불가능한 항공권으로 여행의 윤곽이 고정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작은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봤다. 그 와중에 리조트에 예약을 확인하고 리조트 행 보트 시간이나 몇몇 사용 조건을 문의했는데, 리조트 직원은 대부분의 내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단순히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의도 응대하지 않았다. 이 리조트는 내가 예약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주었을 때 그에 해당하는 대답만을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도착하는 항공편을 알려주면 내가 어디서 보트를 타야 하는지 알려줬지만, 내가 그 보트를 언제 탈 수 있는지 또 내 예약이 그 보트를 무료로 이용할 조건이 되는지 물으면 답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꼼꼼한가 싶다가도, 일 처리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너무 들어서, 이용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문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올해 초 예약했던 오키나와에 있던 리조트와 너무나도 대비되어 불안했다.

동행이 있기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위험은 해소하고 가기로 마음먹었고 나는 일주일에 걸쳐서 내 궁금증의 일부를 해소할 수 있었다. 답변의 품질을 좋지 않았다. 리조트의 동측에 쓰레기 처리 시설이 위치하고 있어서 나는 일몰을 볼 수 있는 방을 예약했는데, 내가 내 방에서 쓰레기 처리장이 보이냐고 질의했을 때, 방의 조망은 미리 확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은 뒤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리조트는 중력이 휘어서 서쪽을 봐도 동쪽이 보일 수 있나 보다. 아니면 동쪽 조망에서도 일몰을 볼 수 있던가. 정말 극렬히 짜증 났던 순간은 내가 문의한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홈페이지에 있던 이용 조건을 복사 붙여넣기 했을 때다. 응대원은 내가 이용 조건도 읽지 않고 문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짜증이 나서 리조트를 바꿔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스리랑카 항공으로부터 내가 타야 할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내가 항공권을 구입한 에티하드 항공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에티하드 항공 상담원은 중간중간 사실을 확인해 보겠다면서 몇분간 기다려달라고 아주 여유롭게 말하고는 취소 공지가 없으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하면서 내일 다시 연락해 볼 것을 권했다. 내가 내일은 토요일이니 전화 상담이 안되는 거 아니냐 물으니 영어로 하면 언제나 통화할 수 있다고 답해줬다.

다음 날에 이야기한 상담원도 어제 상담원처럼 중간중간 자기가 알아보기 위해 몇 분간 기다려달라고 아주 여유롭게 말했다. 그리고 결국 나에게 답해준 것은 내가 스리랑카 항공에 직접 연락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자기가 내 질문을 모두 해결해 주어서 너무나도 기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그렇게 스리랑카 항공에 연락을 했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직까지 말레에서 아부다비 가는 직항편 자리가 충분히 남아있는 것 같았고 또 가격도 더 싸서 그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월요일이 되어서 스리랑카 항공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 회사에 전화했다. 상담원은 친절히 응대해 줬다. 점심시간에 답변이 왔는데 항공편은 취소된 것이 맞고 이번 주 안에 에티하드 쪽으로 취소 안내를 보낼 것이니 그때 여정을 변경하면 된다고 했다. 에티하드 약관에는 비자발적인 여정 변경이 있을 때에는 조건 없이 환불 또는 무료로 일정 변경이 된다고 쓰여 있기에 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에티하드가 기름국 항공사이니 좀 널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에티하드로부터 내 여정 중 일부가 취소되었으니 다른 여정을 선택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문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정은 원래 예정보다 말레에서 하루 늦게 출발하는 경우뿐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몰디브에서 하루 더 체류하고 아부다비에서는 하루 덜 있다가 인천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 에티하드에 연락했다. 상담원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하다가 내가 공식 사이트에서는 아직 예약할 수 있는 다른 일정도 있다고 하니 또 한참이나 기다린 뒤에 원래 일정대로 몰디브에서 출발할 수 있는 여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부다비에서 인천으로 출발일이 하루 앞당겨진 일정이었다. 이 두 가지 말고는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취소 후 구매하기 위해 원래 일정에 근접한 항공권 가격을 검색하니 가격이 배는 올라 있었다.

다음날 눈을 평소보다 일찍 떴다. 에티하드 한국 지사 영업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어제 겪었던 일을 똑같이 겪었다. 내가 물러서지 않자 상담원은 다소 신경질을 내었고 또 그냥 환불하라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나도 그만할까 생각했지만 같이 가는 사람이 있기에 마음을 바로잡았다. 상급자와 통화할 수 없냐고 물으니 오후에 출근할 뿐만 아니라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나는 화를 누르고 항공편 취소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되도록 방법을 찾아서 다시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상담원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들은 해줄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추가 금액을 내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는데, 비즈니스 발권을 하면 인천으로 출발일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신혼여행인데 비즈니스석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추가금을 결정했다. 그런데 상담원은 전 여정을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은 육백만 원이다. 이것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오후에 매니저가 출근하면 한 번 논의해 보고 다시 연락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원하는 여정으로 변경된 항공권을 이메일을 통해 받았다. 그리고 다시 상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정을 변경했고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몰디브에서 출발하는 아부다비 직항을 고르지 않은 내 손가락을 다시 한번 탓했다. 더 황당한 것은 내가 새 항공권을 받은 뒤로도 에티하드는 스리랑카 항공에서 이미 취소한 여정을 팔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내 일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스리랑카와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선입견 하나가 생겼다. 특히나 스리랑카는 더 안 좋게 여겨지게 되었는데, 스리랑카 근처에 있는 인도 항공에 대한 악몽스런 경험이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발급받은 항공권은 어째서인지 기존보다 좌석 등급이 더 높아서 미리 앉을 자리를 지정할 수 있었다. 아내는 날개가 있는 중앙 부분 자리가 싫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부분을 보고 있으니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또 기존 여행에서는 창가 쪽을 선호했었는데, 이번에는 장시간 여행이니 복도 쪽을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려 하니 다시 자신은 아무 상관 없다고 말했다. 비행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날 배려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여정을 보고 해가 바로 들지 않는 방향의 자리를 골랐다. 돌아올 때는 날개 부분을 피했는데, 다소 시끄러워도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일정이 모두 다 정리되었다고 생각하고 한숨 돌리려는데, 숙박 예약 중계 서비스인 아고다에서 리조트 비용으로 이십만 원이 더 결제되었다. 지난 일본 여행에서도 아고다의 나중 결제에 수수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결제를 했었는데, 이번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이십만 원이 더 결제된 것이고 지금 무료 취소가 가능하고 또 같은 가격에 같은 객실은 예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사태 파악을 위해 환율도 계산해 보고 무료 옵션이 유료로 붙은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어쨌든 아내는 아고다에 문의해서 추가 결제된 부분을 돌려받았다.

이 사건에서 나는 결국 최종 피해 금액만 신경 쓰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에 집중했다.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바꾸려 노력한 것인데, 이런 태도는 잠시 일했던 시행사에서 더 강해진 것 같다. 특히 “원샷”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크게 떠올랐다. 건물을 짓기 위한 대출 과정에서 이자와 수수료를 모두 포함해 지불해야 할 금융 제반 비용을 “원샷”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두 대출을 비교할 때 한 대출이 이자가 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 같은 기간 동안 들어가는 돈의 총량이 적어야 좋은 선택이 되기에 만들어진 개념 같다. 여튼 대출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세세한 것은 모두 뒤로하고 단 한 가지로 숫자로 표현해서 선택을 쉽게 하려고 만들어진 개념일 것이다. 보기에는 좋지만, 이렇게 한 가지 숫자나 개념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할 때, 하찮고 힘없고 약한 것이 소외되는데, 어느새 내가 이런 습관에 물든 것 같다.

이제 진정 모든 문제가 끝나고 여행을 떠나기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슬슬 젊다고만 할 수 없는 내 몸뚱아리가 문제를 일으켰다. 결혼식 날 등에 담이 온 것이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갈비뼈에 실금이 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일주일 내내 병원에 다니고 겨우 출발 전일에 나아졌다. 그래도 조심하느라 출발일에는 무거운 케리어를 내가 끌지 못했고 몸에 핫팩을 붙이고 아부다비까지 갔다.

우연히 일어난 일들

여행을 준비할 때와 다르게 몰디브로 가는 길에는 우연찮게 좋은 일들이 많았다.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운이 좋았다. 터미널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주차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면세 구역 스타벅스에서는, 음료를 시키는데 옆에서 텀블러 여러 개를 산 외국인이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더니 자신이 받은 음료 쿠폰 여러 장을 주었다. 몰디브 가는 비행기 좌석도 좀 더 넓은 자리로 승급되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 승무원이 인사를 와서 왜 그러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값을 지불해야 하는 자리에 앉아 간 것이었다.

(넓은 자리에 앉아보니 꽤 편했다. 그래서 돌아오는 여정에도 넓은 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비용을 지불하면 되지만 요행을 바라며 이미 지정한 자를 모두 취소하고 다시 한번 행운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았다. 낙담한 마음을 추스르고 비용을 내려고 했으나 오류로 좌석 지정이 되지 않았고 현장에서 추가 결제하려 했으나 둘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이미 모두 나가버렸다.)

몰디브 리조트에 도착하고 나서는, 에메랄드 빛 바다에 어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서두르다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계단에 이끼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정말 천운인 것은 그대로 물에 빠져서 옷만 조금 상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몰디브의 첫날 남편의 자빠링은 몰디브의 마지막날 아내의 자빠링으로 정확하게 처음과 끝이 일치하게 되었다. 나는 크게 한숨 쉬고 말았지만, 아내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말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늘 일어난다. 세계는 내 의지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자연은 그냥 돌아갈 뿐이고, 약해빠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을 이해했다고 믿기 위해 마주한 사건들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야 만다. 여행의 시작에 날씨가 좋다면 남은 여정도 밝을 거라고 믿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기대는 아주 쉽게 부서진다. 해는 그냥 뜬 것이지 나를 배웅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 여행 중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귀환한 것에 대해 안도할 뿐이다.

욕심의 다이빙

여행 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짜증나는 일 하나를 꼽으면 스쿠버 다이빙이다. 사실 나는 처음에 몰디브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사촌 형도 같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사촌으로부터 거기까지 갔는데 스쿠버를 안 하면 어떻게 하냐는 소리를 듣고부터 조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여행이 우리 여생의 축소판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굳이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쉽게도 몰디브 바닷속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엄청나지 않았다. 물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지 못했다. 방에서 바다와 바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면 산호 몇 개를 볼 수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다이빙 센터에 가서 자력으로 산호를 볼 수 있는 곳을 물으니, 요트나 패들 보트를 타는 곳에 가면 된다고 했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부이로 구분된 영역을 넘어가야 했다. 또 그곳에서 스노클링 하는 사람도 없고 가끔 모터 보트가 지나다녀서 가보지 않았다.

몰디브에 와서 삼 일째 되던 날, 비가 와서 일어나자마자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날씨마져 궃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아침을 먹으며 아내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안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마사지를 받고 나는 스쿠버를 하기로 했다. 다이빙 센터에 가서 보트 다이빙을 예약하려고 하니 마지막 다이빙 날짜가 육 개월이 지나서 재활성화 교육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수영장에서 연습했다고 읍소했지만 다이빙 센터는 너무 완고했다. 아내는 하고 싶었던 것이니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에 내가 본 가격은 백이십오 달러였는데, 여기에 서비스 비용 10%와 세금 8%가 추가로 붙었다. 또 라이센스 발급비 육십 달러도 추가로 받아 갔다. 물론 여기에도 서비스 비용과 세금이 추가로 붙었다. 그리고 이 교육 덕분에 본의 아니게 휴양하러 와서 두세 시간 동안 혼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여튼 교육을 하기 위해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마스크에서 물을 빼는 방법과 호흡기를 되찾는 간단한 실습을 하고 근처에 있는 난파선 두 척을 들렀다. 상어를 본 것은 덤이다. 내가 다이빙을 배운 보홀보다 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친절했던 강사는 몰디브 남쪽에서 다이빙 하기를 추천했다. 이때 사촌이 체험 다이빙을 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다이빙한 장소와 사촌이 다이빙 한 장소가 같은 상황에서 내가 크게 만족하지 않았으니 보트 다이빙에도 기대를 걸지 말고 그만 멈췄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보트 다이빙이 두 시간으로 잡혀있기에 삼십 분은 배를 타고 나가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보트 다이빙은 나 혼자 나갔다. 작지 않은 배에 직원 세 명과 나가는 것이 조금 멋쩍었다. 이날 나간 다이브 마스터는 어제 나간 사람과 다르게 친절하지 못했다. 쌩뚱맞게 자기 장비를 자랑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날 짜증의 정점은 입수 후에 공기통이 꽉 차 있지 않았던 것을 확인한 것이다. 물론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놈들이 한 명 나가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고 다이브 마스터도 영 틱틱거려서 다이빙 내내 오기를 품었다. 최대한 얕은 수심을 이용해 오래 있으려고 마음먹었다.

다이빙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곧 아내를 보았다. 마사지 시간과 다이빙 시간이 맞춰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바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이빙 간 짜증이 조금 풀렸지만, 어제 받은 교육 라이센스 발급에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다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내 전화기는 몰디브의 더운 날씨를 겪고 맛이 가버렸다. 언짢은 마음을 품고 오늘 한 다이빙 비용 청구서에 서명했다. 혼자나갔으니까 쟤들도 짜증 났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남은 일정을 기분 좋게 보내고 싶어서 그랬다.

그렇지만 영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이 감정을 놔두면 더 어두워질 것 같아서 바에서 음료 한 잔 마시고 있다가 다이빙 센터로 갔다. 출발하며 마음먹은 것은 약간의 할인이었다. 그냥 그걸로 되었다. 나와 다이빙한 다이브 마스터는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 기다렸다가 매니저와 대화했다. 매니저는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 줬다. 약간의 할인을 해줄 수도 있지만 프리다이빙을 해보았냐고 물어보면서 수중 스쿠터를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다음 날이 떠나야 하는 날이고, 스쿠버 다이빙 이후 비행기를 타면 안 되는 시간 동안은 프리다이빙을 하는 것이 썩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할인을 요구했다. 매니저는 10%를 말했고 나는 20%를 말한 뒤에 15%로 합의했다. 다이브 마스터는 기존 청구서를 찢고 새로운 가격이 적힌 청구서에 내 서명을 받아 가면서, 입수 초기에 이에서 삼 초 정도 호흡기에서 공기가 샌 것이 공기통의 사분의 일이 비게 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말하고 매니저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센터를 나왔다.

그래도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그냥 다이빙 견적만 받고 다시 찾아보고 결제하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하고, 리조트 주변 다이빙 장소를 검색해 봤어야 하기도 했다. 또 현지 다이빙 센터 가격도 한 번 확인하고 비교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첫날 다이빙 후에 다음 다이빙을 숙고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급해서 완전히 멍청하게 의사결정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예비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미리 상의하지 않아서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미리 물어보고 동의를 구했으면 한국에서 충분히 찾아봤을 것이다. 그래도 아내가 괜찮다니 마음이 나아졌다.

동반자

나는 무엇에 대한 것이든, 그 가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살면서 수많은 가격표를 보지만, 그 물건의 최저가가 어떻게 되었든, 그 상황에 맞는 내 기준에 합당하다면 사도 된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일단 내 스스로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야 한다. 내가 괜찮아야 괜찮은 것이다. 스스로 정당화를 못 하는데 남의 말에 의존한다는 것은 참 비참한 일이다.

앞서 다이빙 센터에서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마음이 수면에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옆에 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내 생각을 말하며 객관화할 수 있었고 공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이빙 센터에서 내 불만을 토로할 때도 혼자보다는 둘이 훨씬 나았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혼자보다는 둘이 있어서 다행인 측면이 많았다. 하다못해 혼자 돌아다닐 때에는 빵 하나 사서 끼니를 때웠을 텐데, 둘이니 식당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간다해도 위험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 텐데 둘 이니 요리 하나는 모험을 해볼 수 있었다.

몰디브에 오기 전에 아내와 나는 프리다이빙을 함께 배웠다. 그래서 다이빙이 충분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고 꼭 둘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늘 프리다이빙의 여러 수칙을 상기시켰다. 덕분에 다이빙 센터에서도 가볍게 생각하는 스쿠버 다이빙 후 비행 금지 시간 동안 프리 다이빙 금지라는 규칙도 지킬 수 있었다. 패들 보드로 리조트 근처의 스노클링 포인트를 확인한 후로 나는 눈만 감으면 바닷속이 보일 지경이었는데, 만약 나 혼자였으면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내의 체력도 생각해야 하기에 다이빙 교재에 나오는 미리 계획된 다이빙 그 자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여정을 짜다 보니 재확인하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던 일도 왕왕 있었다. 그렇지만 같은 서류를 둘이 보아서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아부다비 공항은 새로운 터미널 이전으로 복잡복잡했다. 나는 터미널 이전에 대한 메일을 받고 뒤에 다시 온 취소 메일을 무시했었다.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사진이 같은 것이어서 같은 내용으로 알고 넘긴 것도 있고 메일과 메일 사이에 항공권 예약 번호가 변경되어서 같은 메일이 온 것으로 알았다. 만약 나 혼자였으면 다른 터미널로 가서 괜한 시간과 돈을 낭비할 뻔했다.

혼자 돌아다닐 때보다 둘이 돌아다니니 제약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결과는 딱 두 가지 경우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첫 번째는 마음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경우다. 나랑은 거리가 먼 군자의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마음대로 하면 하는 족족 도리에 어긋나는 경우다. 나는 후자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고, 그러니 제약에서 오는 불편함은 나에게 앞날의 위험을 막아 주는 고마운 일로 생각해야 한다.

내 아내도 나와의 여행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특별한 것도 아닌데 뭐라도 한 번 더 해보고 싶어 하는 내 성향을 맞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랑 같이 가지 않았다면 덜 걸었을 것이고 바다에도 덜 들어갔을 것이다.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거나 차를 타고 사막으로 가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 때문에 마주한 사건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또 일정이 진행될수록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처음는 우리 둘이 혼자 잘 놀 수 있는 다 큰 어른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었다. 몰디브에서 나는 아쉬움에 출발하는 그날까지 바닷속에 들어갔다. 당분간 물놀이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는 아내는 방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몰디브를 즐겼다. 아부다비에서도 지친 아내가 호텔에서 쉬는 서너 시간 동안 나는 나가서 아침도 먹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에 대한 설명은 <<향연>>에 나온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머리가 둘이고 팔과 다리가 각각 넷인 동그란 형태였는데, 신들한테 덤비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반으로 쪼개졌다는 이야기다. 반으로 쪼개진 부분을 훔쳐서 꿰맨 흔적이 배꼽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반쪽을 잃은 아픔을 갖고 산다. 사랑은 이 반쪽을 찾아 우리를 온전하게 되돌린다. 비록 우리가 각자의 부절이지만, 각자인 시간이 많기에 그 이음부는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혼자 노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만 이런 상황을 괜찮다고 여긴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할 뿐이다.

마주함

사막

처음에 아부다비에 간다고 했을 때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꿈을 꾸었다. 아내는 쇼핑, 나는 사막. 평소에 나는 도무지 사막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래 언덕이 나올 때도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다. 또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환경이 주는 경외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회가 생겼을 때 가자고 사막 노래를 불렀다. 마침 아내도 몰디브에 너무 오래 체류하는 것이 지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몰디브 일정 하루를 줄이고 아부다비 일정 하루를 늘려서 쇼핑과 사막을 모두 하기로 했다.

원래는 해질녘 사막을 보고 싶었지만 모든 투어 상품이 거추장스럽게 저녁 식사가 포함되어 있고 요상한 춤사위를 구경해야 해서 걸렀다. 아부다비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알 아인이라는 오아시스 도시에 갈 생각도 했다. 가는 길에 사막도 보이고 이 동네의 역사적 맥락을 읽기도 좋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루를 써야 하는 일정이기에 다음으로 미루었다. 사막에서 일출을 보는 투어도 있었지만 자정이 되어 도착해서 새벽에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식사와 춤사위가 포함되지 않은 오전 사파리로 정했다.

투어 당일 아침에 시간에 맞춰 호텔 앞으로 나갔다. 우리를 태우러 온 직원이 도착했다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직원이 같은 브랜드 호텔의 다른 지점으로 가버린 것이다. 덕분에 삼십 분 정도 더 기다렸지만 정중히 사과를 해서 크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미 두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나는 조수석에 앉고 아내는 뒷자리에 앉게 된 점이 신경 쓰였다.

아내와 함께 탄 프랑스인 아저씨와 스위스인 아주머니는 상냥했다. 우리가 떨어져 앉은 것을 의식해서인지 아주머니는 아내를 챙겨 주었다. 한 가지 웃긴 점은 뭔가 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아저씨는 아주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마지못해 거기에 맞춰준다는 느낌이 왕왕 있었다. 낙타를 타보거나 차로 사막을 질주할 때 아저씨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는데 아주머니는 꽤나 겁먹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또 다 같이 해주긴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아내가 사막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막 투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보통 자연을 둘러보는 투어는 맛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사막 투어는 진짜 사막에 갔다. 정말 사방으로 모래밖에 보이지 않는 사막이다. 몰디브 가는 비행기에 본 “미션 임파서블”의 초기 배경이 사막인데, 이제 그 사막이 무슨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모래는 정말 고왔다. 호텔에 돌아와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털었는데, 털어도 털어도 계속해서 모래가 나왔다. 또 이날 입은 바지를 서울에 와서 몇 번 입고 빨고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모래가 바닥에 쏟아졌다. 입으로 모래가 들어올 때도 있었는데 뱉기도 애매한 크기라 그냥 목으로 넘어갔다. 간혹 씹히기도 했는데, 바다에서 물고기가 밥 먹을 때 나는 까득까득 소리가 났다.

투어에는 모래 언덕을 차로 치고 넘어가는 듄베이싱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차로 이리저리 움직여 주지 않아도 차 안에서 하루 종일 사막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듄베이싱은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미 차로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몇 번 경험했고, 자동차가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급격히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어렸을 적 다카르 랠리 중계 속 드라이버에게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모래가 유리창으로 쏟아질 때는 기억이 선명하다.

낙타를 타본 것 또한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으나 가이드가 불러서 낙타 타는 곳 주변에 있다가 한번 타보자고 마음먹었다. 동물원에서 본 낙타 타는 곳에는 늘 높은 디딤대가 있어서 낙타가 굳이 앉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낙타가 앉고 내가 그 위에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이 높이가 상당하더라. 그리고 낙타가 앉고 일어설 때 다리 관절의 움직임이 상당히 특이했다. 무릎 관절과 고관절만 움직여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발목 관절을 무릎관절처럼 사용해 일어난다.

낙타 타기를 마지막으로 사막 투어는 끝이 났다. 돌아가는 길에는 차에 들어온 파리 때문에 차 문을 잠시 열고 갔는데 맨눈으로 사막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차가 달리면서 슬슬 인가와 도로가 보였고 어느새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높은 빌딩과 빽빽한 자동차 틈으로 사막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사실 사막에 오지 않았다면 아부다비가 사막 위에 올려진 도시라는 것을 알아차리 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리조트

아부다비에서는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몰디브에서는 리조트에만 있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몰디브 공항에 내린 것은 맞지만 내가 몰디브를 다녀왔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지어 난 몰디브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공항 면세 구역을 나와서 물과 과자를 샀지만 달러 결제가 가능해서 굳이 환전할 필요가 없었고 리조트의 가격표도 모두 달러만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리조트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말레 공항에 도착해서 리조트 카운터에 가방을 맡기고 나서도 그랬다. 언제 출발하는지 직원은 대답해 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조금 더 기다렸다 출발한다고 했다. 나에게 도착하는 항공편을 물어봤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목록이 있을 텐데, 왜 출발 시간을 말해주지 못하는지 속으로 투덜거렸다.

한 삼십 분 정도 기다리다 한 커플과 같이 배에 오르게 되었는데, 짐을 옮겨주는 직원은 나에게 몰디브가 처음이냐고 물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야 할 배 앞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부두인 게 신기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직원은 좌우를 살펴주었다. 배에 타서는 구명조끼를 입혀 주었고, 선장 한 명과 다른 선원 둘은 앞을 주시했다. 또 내가 손에 쓰레기를 쥐고 있으니 직원이 다가와 버려준다고 했다. 직원들의 태도가 동남아시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리조트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이 선착장에 마중 나와 있었고 체크인 과정 또한 친절했다. 직원은 중간중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질문으로 처음 온 곳에 대한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또 도착 항공편에 맞춰서 미리 체크인을 해주었다. 또 출발 전날에는 항공편에 맞춰 늦은 체크아웃을 해준다고 알려주어서 편하게 머물 수 있었다. 늦은 체크아웃을 해주니 항공편이 취소되어 더 늦은 비행기로 바뀐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 되었다.

내 우려보다 리조트는 굳이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정말 그냥 예약하고 와서 편안히 있다가 가면 되는 구조였다. 여러 서비스와 식사와 음료가 모두 포함된 리조트여서 여러모로 조건에 신경쓰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를 들어 객실 안의 미니바의 경우에도 무료라는 단어가 없고 하루에 한 번씩 채워준다고 하고, 또 미니바 위에 가격표가 따로 있어서, 이것들이 채워주기만 하고 돈은 따로 받나 싶어 다시 물어보았는데, 무료라고 한다. 내가 너무 사기꾼 공화국에 찌들어 살았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직원들은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최대한 해결해 주려고 했다. 식당 예약 시간이 지나서 예약을 하려해도, 그냥 시간이 지나서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식당에 전화해 보라고 알려주었고, 또 식당이 전화를 받지 않아 다시 전화를 하니 자신이 알아봐 준다고 한 뒤 예약을 해주기도 했다. 객실에 우산이 없으니 가져다주기도 했고, 마지막 날 체크아웃을 하고 라운지에서 쉬고 있는데 비가 오니 정리하러 온 직원이 우산이 놓고 가기도 했다.

저녁에 되면 직원이 방문해서 한국어로 인사 했다. 그리고 뭔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주었다. 간혹 객실 정리 후에 수건이 빠져있는 경우가 있어서 저녁에 달라고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내가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해도 직원은 뭔가 해주려고 했다. 방안을 살피며 물이 없지 않냐고 하면서 물을 가져다주겠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부분은 아마도 이곳이 팁을 주는 문화가 있어서인 거 같다. 직원이 뭐라도 가져다주면 얼마라도 팁을 줘야 하는 부담이 뒤따랐다. 아직까지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식당에서는 현금으로 팁을 놓고 가지 않고 객실 번호 앞으로 팁을 달아 놓고는 했는데, 한 식당 빼고는 내가 적은 금액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청구서에 서명하고 신용카드 전표처럼 윗장을 가져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리조트 안에서 청구서에 서명할 일이 많았는데, 나는 늘 하얀색 윗장을 때가고 노란색 종이를 놔두었다. 내가 서명한 청구서를 내가 가져가지 않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한테도 있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맞춰볼 것 아닌가? 그런데 일정 때문에 한번 급하게 청구서를 달라고 하고 직원 앞에서 서명한 적이 있는데, 직원 말로는 하얀 종이는 리조트가 갖고 노란 종이는 식당이 갖는 것이니 놓고 가야 한다고 했다.

여튼 체크인을 끝내고 직원은 카트로 우리를 방까지 안내했다. 중간중간에 리조트 시설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방에는 가지고 온 짐이 미리 놓여있었다. 바다로 트인 테라스로 나가는 창문을 열었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매립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매립 중인 공사장이 있다는 글은 보았었다. 그렇지만 서쪽에 있는 쓰레기 매립지를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동측 객실을 선택한 것인데 이렇게 공사장 뷰를 마주할지는 몰랐다.

사실 공사장이 문제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화물선들도 눈앞을 자주 오갔다. 내가 쉽게 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의 의미는 이미 충분히 개발된 곳이라는 것임을 잠시 간과했다. 망망대해에 섬 하나 있는 그런 이미지를 원한다면 수상 비행기나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몰디브 수도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한다. 다만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크지는 않다. 내가 더 한적한 곳으로 가면 그것 또한 또 다른 파괴이지 않을까. 우린 문화재나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한 앞선 사람들에 대해 혀를 끌끌 차지만, 사실 그 사람들은 나름 지성을 갖고 숙고해서 행동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주의를 갖고 덜 개발된 곳에 방문한다 해도, 후대에 누군가 나를 욕할 것은 분명하다. 환경친화적인 여행 같은 말은 면죄부일 뿐이다.

이렇게 공사장 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바닷속을 살펴보라는 사촌의 말도 도움이 되었다. 아쉬운 것은 가이드 없이 바다에 온 것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한 이십 미터 가면 산호가 많은 곳이 보이는데 갈 수가 없었다. 다이빙 센터에 물어봐서 가도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당히 쫄렸다. 처음이라 그러겠지만 파도도 편안하지가 않았다. 이게 다 스쿠버 다이빙은 너무 좋은 바다에서 배운 덕이다. 나는 동남아 바다는 모두 호수 같은 줄 알았다. 몰디브에 와서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객실이 바다 위에 있어서 언제라도 바다에 나갈 수 있는 점은 참 좋았다. 언젠가 불 꺼진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배관으로 빛이 스며들어 놀랐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가 객실 아래로 가보았는데 배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보온재도 필요 없었다. 정말 비와 바람만 막으면 집이 되는 것이다. 보온재로 칭칭 둘러싸도 배관이 얼어 터지는 나라에 사는 입장에서는 생경스러웠다. 이곳이 남국이긴 하나 보다.

바다 쪽으로 있는 큰 창이 주는 개방감도 상당했다. 특히나 욕실에 딸린 창으로 바다쪽 창을 볼 때가 좋았다. 예전에 살던 곳의 욕실에는 창이 있어서 조명을 켜지 않고 햇빛을 맞으며 씻을 수 있었는데, 그때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태양 아래 알몸으로 있는 것이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데, 현대인에게 맨몸으로 밖에서 샤워하는 경험은 어려운 것이라 더 그럴 것이다.

비슷하게 바다에서도 거추장스럽게 슈트를 입고 있는 것보다는 짧은 수영복 하나만 입고 있는 것이 훨씬 좋았다. 일 밀리미터 슈트도 꼴에 슈트라고 부력이 있어서 무게추가 없으면 잠수하기 불편한 점도 있고 일단 뭘 입고 있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았다. 언젠가 맨몸으로 바다에서 놀 수 있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몰디브에서 적응하지 못한 것 하나는 날씨다. 아침에 커튼을 걷기 전까지 밖의 날씨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침이 맑았다고 해서 긴장을 늦추면 안 되었다. 점심을 먹다가 비가 퍼붓기도 하고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 잠시 망설이면 이내 비가 그치기도 했다. 해변에서 칵테일 파티를 한참 준비하는 와중에 폭우가 퍼붓는 걸 보니 현지 사람들도 날씨는 감이 없나 보다.

마지막 날이 되니 처음으로 객실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알고 보니 전동 카트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아침을 먹고 그간 먹었던 것 중에 기억에 남은 것을 추리려 메뉴를 보기 위해 리조트 앱을 켰는데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 슬슬 이곳과 헤어져야할 때가 온 것이다. 체크아웃 시간은 미뤄주었지만 음식과 음료를 맘대로 먹을 권한은 12시에 끝난다고 했다. 직원은 그 전에 바에서 피자나 샐러드로 요기하라고 슬며시 말해줬다. 그래서 그렇게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다 마른 오리발을 다시 신고 바다를 한 바퀴 돌았다.

체크아웃 후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는 이곳과 헤어지기 좋은 곳이었다. 칠 라운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분하고 조용했다. 단지 치사하게 여기서는 객실과 다르게 전기를 사용하려면 변환기가 필요했다. 불도 꺼져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가야 할 시간이 왔고 직원은 처음처럼 우리를 환송해 줬다. 하루 덜 있었으면 아쉽고 하루 더 있었으면 지겨웠을 그런 시간이었다.

몰디브

리조트를 나와 몰디브 공항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자니 이번 여행은 아주 기묘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디브에 와서 오 일을 지냈는데, 몰디브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고 누가 몰디브 사람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몰디브 돈도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항에서라도 촉을 세워 몰디브가 어떤 곳인지 파악하고 싶었다. 일단 공항에서 나오면 의자 좌판이 다른 나라보다 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 만큼은 아니지만 의자 인심은 꽤 후한 편이다. 그리고 공항 밖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나라는 담배에 아주 관대하다는 것이다. 도착하는 쪽에서 나오면 공항이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데, 길 쪽으로 가면 바로 담배피는 무리들을 볼 수 있다.

면세점에서 화장실을 들렀다. 남자 화장실은 줄이 없었다. 들어가 보니 소변기 세 대와 대변기 세 대가 있었다. 반면에 여자 화장실은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아내가 너무나도 늦게 나와 물어보니 여자 화장실은 대변기 한 대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원래는 장애인 화장실이었는데 이제는 장애인 겸 여자 화장실로 쓰고 있는 것 같다.

출입국 과정과 면세점 구조는 자본에 친화적으로 보인다. 일단 이 공항에는 비행기에 붙이는 다리가 없고 모두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처음 내린 비즈니스 승객을 위한 차량은 아유 널널하게 그들만 태우고 간다. 항공기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이 광경을 보고 나는 아주 인심이 넉넉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코노미 승객부터는 꽉꽉 채워갔다. 비즈니스와 퍼스트 승객 전용 출입국 심사대도 있다. 출입국 심사대는 공항 이 층에 있는데, 올라갈 때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심사를 통과하면 바로 면세점이 나온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다시 일 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때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밖에 없다. 물건 팔았으니 볼일 없다는 것인가?

사실 뭔가 자본에 친화적인 느낌은 아부다비에서도 받았다. 거기에도 브이아피 전용 터미널이 있고 그랬다. 아마도 상업과 밀접한 이슬람 문화권 안이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아부다비

아부다비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특히 우리가 이용한 아부다비 삼 터미널은 이스탄불의 옛 공항인 지옥 같던 아타튀르크 공항의 그 느낌과 흡사했다. 실제로 좁은 것은 아니지만 뭔가 복잡하고 답답한 느낌이다. 인천으로 가는 길에는 새로운 터미널을 이용하기에 나름 다른 느낌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몰디브 갈 때 본 영화에서 이미 본 터미널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터미널이 변경되어서 들러보지는 못했다. 공항 밖도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본 그 아사리판이었다. 아부다비 공항은 전 세계를 직항으로 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많은 환승객이 몰리는데, 같은 이슬람인 데다가 지리적 이점으로 이미 환승 장사를 하던 이스탄불 공항이 참고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외노자 천국인 모습과 다르게 입국심사가 편안한 느낌은 아니다. 심사대도 천장까지 유리로 막혀있고 총을 든 경비가 왔다 갔다 한다. 손바닥 전체를 스캐너에 통과시키는 것은 특이했다. 신기하게도 쇼핑몰처럼 경사가 있는 보드워크가 있었다. 케리어는 카트가 아니기에 당연히 경사를 따라 미끄러진다.

여느 공항과 마찬가지로 택시 호객꾼들을 떨쳐내고 아부다비의 우버인 카림을 이용해 택시를 호출했다. 그런데 자정인데도 공항 밖이 너무나도 복잡해서 기사와 만나기 위해 내 위치를 사진으로 알려줘야 했다. 다행히도 처음 만난 기사는 무척이나 친절해서 그동안 받은 인상이 씻겼다.

놀랍게도 공항에서 아부다비 가는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간당 백육십 킬로미터다. 트럭도 진입이 제한되어 있다. 한국에 도착해서 현대에서 하는 운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서킷을 돌며 밟았던 차량의 속도가 백육십이었다. 아무리 가속은 밟기만 하면 된다지만 살짝 움찔했다. 도로의 제한 속도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서인지 택시를 타면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한 것 같은데 거리가 꽤 나와서 택시비가 비싸게 느껴졌다.

재미있게도 이곳 택시 기사들은 영어로 싸운다. 경적을 한국처럼 울리지는 않지만 하이빔을 쏘거나 상대를 향해 소리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또 짜증이 나면 위를 향한 오른 손바닥을 조수석 쪽으로 치켜올려서 너는 뭐 하는 거냐는 몸짓을 한다. 여튼 그러다가 한 번 택시 기사끼리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았다. 나를 태운 기사가 아랍어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상대가 외국인인가 보다.

이때가 되어서 나는 왜 에티하드 항공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나에게 영어로 말하면 된다고 했는지 깨달았다. 아부다비는 진정 인터내셔널한 공간이다. 국제적인 도시하면 뉴욕이나 런던, 파리 같은 곳이 생각나지만 이런 서구의 대도시는 지들 느낌의 인터내셔널이다. 일단 내가 가면 당연하게도 그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아부다비는 이 느낌이 덜하다. 여기는 아무 데서나 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사는 느낌이다.

이 편안함이 이슬람 문화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상업이나 유목에 관련된 부분이 많은 문화이니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더 발달하지 않았을까. 보통 다른 나라에 가면 일상에서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버스는 앞문으로 타는지 아니면 뒷문으로 타는지, 혹은 가게에서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아부다비에서는 이런 불편함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도시 고유의 문화적 맥락을 읽기 어렵기도 했다. 여기에는 자기들의 것이 없고 모두 여기저기서 가지고 온 것이다. 아부다비 도시사를 나열한 전시물에는 힐튼이나 쉐라톤 호텔이 문을 연 것이나 뉴욕대 분교가 생긴 것을 나열하고 있다. 자신들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을 최대한 끌어와 도시를 꾸미는 데 활용하려는 모양새인데, 나는 좋은 방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비행기에서부터 있었다. 보통 비행기는 안전에 관한 안내 사항을 방송할 때 자국어 방송이 우선인데 에티하드 항공은 영어가 우선으로 나오고 자막으로 아랍어가 깔린다. 아부다비에 대한 광고를 할 때도 영어로 나온다. 안전 영상의 배경은 아부다비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이다. 이 분관의 건축가는 장 누벨이라는 프랑스인이다. 아랍 에미리트 국적기를 탔는데 아랍 에미리트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저것이 짬뽕 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울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좋게 말하면 개방적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문화적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아부다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첫인상보다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다면 시간을 갖고 돌아보고 싶다. 진주조개잡이 하던 어촌이 막대한 자본을 얻더라도 이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Qasr Al Watan

제목을 저렇게 써 놓은 것은 내가 저 발음이 정확히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목에 적힌 저곳은 아랍 에미리트의 대통령 궁이다. 앞서 택시 기사들이 영어로 싸운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아부다비에서 아랍어 들을 일이 별로 없었다. 내가 그래도 수능 볼 때 아랍어를 선택했는데, 아랍어 인사말과 감사 표현은 비행기에서 들어봤을 뿐이다. 아랍어로 감사하다고 말해도 돌아오는 것은 “땡큐”다.

사실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고 간 동네여서, 대통령 궁이 있다는 말에, 아랍에미리트가 대통령 직접선거를 하는 나라인 줄 알았다. 안에 들어가서 보니 역대 대통령이 세 명뿐이고, 모두 혈족 관계여서 그렇지 않은 것을 알았다. 아랍에미리트는 두바이 같은 에미리트가 모여있는 연합국이다. 에미리트 수장이 대통령을 뽑는데 가장 영향력이 큰 아부다비 수장이 계속 대통령을 하는듯싶다.

사실 전날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에 들러서 대통령 궁에 큰 기대가 없었다. 그냥 대충 큰 거 겠지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가지 않았다. 내부는 이미 예상했던 데로다. 문화나 역사적 내용으로 가득 찬 공간은 아니다. 자료실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겉만 본 도서관은 빈약해 보였다. 서양이 중세 암흑기에 있을 때 그리스 전통이 아랍에서 보존되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전시도 있었는데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리 표를 예매하지 않아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고, 앞서 Qasr Al Hosn에서 산 기념품에 포함된 유리가 검색 과정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졸라 커서다. 크다, 진짜 졸라리 크다. 핵물질이 임계질량을 넘으면 폭발해 버리는 것처럼 규모도 내용과 상관없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일단 먹고 들어가는 면이 있다. 이 대통령 궁이 그렇다.

그리고 보통 크면 눈에 잘 안 보이는 곳이 엉성하게 마무리되어 있고는 하는데, 여기는 사실상 광기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화장실 한 칸이 어지간한 원룸보다는 좋고 노출된 엘리베이터 통로도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문의 경첩 쪽 틈에도 장식이 있다. 정말 빈 곳 없이 마감을 한 것 같다. 빈 곳이 없이 꽉 채워진 덕에 눈이 쉴 틈이 없어서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는 것을 설명을 보고 알았다.

앞서 말했지만 이 공간의 아쉬운 점은 내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를 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여행 전에는 아부다비라는 도시의 존재도 몰랐고, 아랍 에미리트가 익숙한 나라도 아니다. 두바이나 좀 들어봤을 뿐이다. 되려 내 아버지 세대는 중동 건설 붐 때문에 사우디나 아랍 에미리트에 더 귀가 익어 있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의 부재는 우리나라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한국에 돌아와서 대통령 별장으로 쓰였던 청남대에 갔다. 우리나라 정서상 대통령이 별장에 돈을 들인다면 욕을 얻어먹을 게 분명하지만, 아무리 사십 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해도 너무 못 만들었다. 같은 날 주문된 거대한 걸개그림으로 큰 공간을 대충 때우거나 요상한 서양 화가의 복제 그림 전시하는 등,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내용도 아부다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청남대가 조금 나은 점이라면 그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두 공간 모두, 그곳에 전시된 내용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 있었던 좀 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좀 더 나은 내용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통령의 복잡한 정치적 행위나 상징을 이해할 여력은 없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내용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하찮고 사소하다고 여기는 것을 모아서 추려본다면 이 두 공간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Qasr Al Hosn

대통령 궁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발음이 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궁과 다르게 Qasr Al Hosn은 아부다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은 마천루 이전의 아부다비를 지키던 작은 성채로, 아랍 에미리트를 구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아부다비 수장이 살았던 곳이다. 여기도 공간에 비해 내용이 모자라지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부다비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갈 뻔했다.

이 성채의 옆에는 장인의 집이라는 별관이 있다. 입장권은 여기서 구매해야 한다. 외관은 직조된 천으로 둘러싸여진 독특한 모습이다. 안에서는 아부다비의 전통 공예에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진주조개를 잡는 도구나 천을 직조하는 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특별히 아라비아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방식을 보여주는 시연이 있다. 처음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지만 직원이 와서 권해서 따라 들어갔다. 커피를 갈고 샤프란 같은 향신료를 넣은 뒤 따라주는 커피를 대추야자와 함께 마시는데 꽤 괜찮았다. 커피를 금속 절구에 빻을 때는 일정한 리듬으로 봉을 절구에 부딪히는데 은은한 소리가 나서 좋았다.

전시 마지막 즈음에는 전통 직조 방식으로 꾸민 나이키 운동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다. 이미 말했지만 비슷하게 아부다비 역사를 설명하며 힐튼 호텔이나 쉐라톤 호텔이 개관했다거나 뉴욕대 분교가 생겼다는 내용이 나열되는데 어떤 이유로 이러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좀 유아적으로 말해보면, 나이키나 힐튼 같은 서양 브랜드가 좋아 보여서, 좋은 것을 차용해 온 것인지, 아니면 저런 브랜드가 지닌 영향력을 갖고 싶어서 일단은 끌어다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성채를 다 둘러보고 다시 입장권을 구매한 곳으로 가서 기념품 몇 가지를 샀다. 개중에 우리돈으로 팔만 원 정도 하는 물건 여러 개를 샀는데 직원이 하나만 사는 것으로 여겨서 다시 몇 개라고 말하니 정말이냐고 여러 번 확인했다. 직원은 절대 팔리지 않을 물건이 팔린 눈치다. 아직 자신들의 것에 확신이 없는 태도라고 여기면 확대해석일까?

성채 안에는 성채가 증축된 역사와 아부다비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물건과 사진이 남아있어서 참 마음에 들었다. 따지고 보면 백 년도 안 된 것들이니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보기 좋았다. 물론 그 내용은 빈약하지만 말이다. 또 이 성채에 적용된 아치 문양을 시대순으로 비교하거나 자연 통기 방식에 대한 설명 부분도 좋았다. 다만 성채가 복원된 흔적이 역력한데 어디까지가 복원된 것이고 어디까지가 원래 있던 부분인지 잘 구분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또 전시를 위해 원래 있던 창이나 전통적인 통풍구를 제거한 흔적이 역력한데 훼손을 좀 덜 하는 방향으로 전시를 공간을 구성했을 좋았을 것 같다.

여튼 이곳이 사람이 엄청 살던 곳도 아니고 사람이 사는 둥 마는 둥 했던 어촌이라는 점에서, 이 정도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꽤나 노력한 것 아닐까. 마천루 이전의 아부다비를 알고 싶다면, 한 번 와 볼 만한 공간이다.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

Qasr Al Hosn은 갈까말까 했지만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는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슬람 문화권에 가는데 이슬람 사원만큼 그네들을 잘 알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모스크가 복장 규정이 있어서 좀 귀찮게 여겨지기는 했다. 남자에게는 관대했지만 여자는 손목과 발목 그리고 머리카락을 가려야 했다. 아내가 불편해하는 기색도 있고 해서 여정에 포함시키기는 않았다. 그런데 호텔 가는 택시 안에서 이 모스크를 보게 되었다. 크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라서 규모가 잘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그래서 가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정도 이래저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방문하게 되었다.

이 모스크는 정문으로 진입할 수 없고 지하에 있는 쇼핑몰을 거쳐 진입할 수 있다. 성전 앞에 상업시설이 즐비하니 좀 이상하게 여겨졌다. 보통 대규모 주거시설을 개발하면 이익의 큰 부분이 거기에 딸려있는 상가에서 나오는데, 딱 그 모양새 같았다. 거대한 시설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하는데 입장료 수입 외에는 딱히 수익 사업이 없으니 상가를 개발한 느낌이다.

쇼핑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이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많이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여기도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치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식탁 위에 놓고 가면 직원이 치워주는 방식이었다. 입장 전에 예약을 해서 크게 기다릴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입장하는 곳에 사람이 꽤 몰려있었다. 복장 때문에 입장 거부당한 사람들이 있어서다. 나도 아내가 두를 천을 빌릴 곳이 있냐고 물었는데 꽤나 불친절하게 없다고 알려줬다. 안내데스크에 다시 물어보니 유쾌한 직원은 아내에게 한 발짝 뒤로 가보라고 한 뒤 옷을 스윽 보더니 머리를 가리는 천만 있으면 된다고 하며 무무소가 싸니 그곳에 가서 사라고 추천했다.

이 도시에 있는 것들이 그러하듯이, 모스크는 내부는 정말로 크다. 그냥 규모에서 오는 숭고함이 있다. 구석구석 세부 사항도 모자라지 않다. 멍청하게 크기만 한 건물은 아니지만 크기에 비해서 안을 둘러보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설명이 있지만 대부분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엇무엇이라는 설명이 전부다.

내가 모스크에 온 것인지 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나는 여기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여러 시간이 적힌 시계가 있어서 뭔가 궁금했는데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티하드 항공 좌석에 달린 모니터를 이것저것 누르다가 이슬람 기도 시간이 여러 개 나와 있는 화면을 보았고, 이때가 되어서야 그 시계가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것을 알았다.

이슬람 교리나 그네들의 신앙에 따른 제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지키지 않지만 사진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찍으라는 설명을 보면 뭔가 자신들의 규칙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모스크 앞에 대규모 상업 시설을 만들어 놓은 걸 보면 뭐 크게 따질 게 있나 싶기도 하다. 적어도 모스크에 왔으면 모스크가 어떻게 쓰이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성당에 가면 적어도 신도석에는 앉아 내부를 응시할 수 있고, 절에 가면 목탁 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

이 모스크는 구십 년대에 지어지기 시작했기에 오래된 성당이나 절처럼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이야기는 쌓아가는 것 아닌가. 차라리 모스크에 진입하는 지하통로 좌우로 걸린 건설 과정에 대한 사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으면 어떨지 싶다. 그리고 현대에 지어졌으니 현대인에게 알맞게 이야기를 전달한 방법들을 고안하기에 더 유리한 점도 있지 않을까. 상점에서도 볼 수 있는 포장도 뜯지 않은 값비싼 물건을 굳이 남의 집에 가서 보고 온 느낌이다.

야스몰

아부다비를 여행하며 원래는 대형 쇼핑몰 두 곳을 방문하려 했다. 하나는 야스몰이고 다른 하나는 야스몰 보다 먼저 있던 마리나몰이다. 두 쇼핑몰을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한 곳밖에 들르지 못했다.

이제 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야스몰은 엄청나게 크다. 안에 페라리 월드 같은 실내 테마파크도 있다. 문제는 지도가 없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야스몰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앱을 통해 택시를 호출하는데, 앱에서 지정한 탑승 장소를 찾지 못해서 한참이나 해맺다. 결국 처음 내렸던 곳으로 돌아가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특이하게도 대형 서점이나 문구점이 없다. 홈페이지에서 작은 서점이 있는 것은 알았는데 끝내 찾지 못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하긴 서점을 장난감 가게와 같은 종류의 상점으로 구분해 놓았으니 크게 기대할 바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Qasr Al Hosn에 있는 작은 자료실에서 아랍어로 쓰인 책 몇 권을 볼 수 있었다.

대형 서점만 없는 것이 아니라 국산품 자체가 드물다. 아랍 에미리트 산 담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선물로 사 가려 했으나 한국산 에세를 찾는 것이 더 쉬웠다. 아부다비에서 영국에서 왔다는 부 버거를 먹고 있자니 느낌이 이상했다. 사실 야스몰에 있는 많은 상점이 이미 내가 아는 것들이다. 이 동네 것이라고 부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헷갈렸다. 몰에는 페라리와 워너 브라더스 테마파크도 있는데, 굳이 빌려와야 하는 이미지인가 싶었다. 프랑스 건축가를 기용한 루브르 분관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세계 여러 브랜드를 갖춘 거대한 쇼핑몰을 보고 있자니 “개발 논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모스크 앞에 쇼핑몰 개발을 할 정도니 잘못된 연상은 아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일단 차용해오는 것이 쉽고, 또 그렇게 차용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 역량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이것저것 가지고 와서 끼워 맞춰 놓은 모습이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이 정도 자본이면 스스로 뭔가 만들어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도 쉽지 않다. 작은 상가를 만든다고 프랜차이즈를 개발할 수는 없겠지만 양 끝을 오가는 데 삼십 분은 걸리는 거대한 쇼핑몰을 만들 정도면 새로운 프랜차이즈 하나는 충분히 만들고 남지 않을까.

아부다비 상인들은 한국 상인들보다 직업의식이 철저해 보인다. 가게에 들어가면 상인들은 늘 먼저 인사한다. 약간 느린 감은 있지만 어느 가게나 손님의 밀도가 높지 않아서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만약 응대 중인 손님이 있으면 다른 점원이 오거나 앞서 응대를 기다릴 때까지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굳이 야스몰의 상점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있는 편의점 직원들도 적어도 응대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상인과 고객의 관계와 역할이 우리나라보다 철저하게 정의된 느낌이다.

아부다비 상업시설과 한국이 비슷한 점 하나는 일찍 열고 늦게 닫는다는 점이다. 아침부터 자정까지 하는 가게들이 많다. 아부다비에 자정에 도착했을 때도 밥 먹을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밥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낮에는 더워서 돌아다니기 힘드니 해가 없을 때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 같다. 편의점에 두세 시쯤 가보면 간단한 도시락을 사 먹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여행을 다녀온 주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를 보았다. 곤조 있는 늙은이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싸질러놓은 만화를 만 원 넘는 돈을 줘가며 보았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렸다. 그런데 또 그렇게 해도 사람을 끌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영화의 내용은 차차 하고 제목은 참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이지만 잘 하지 않는 질문이니까 말이다.

여행을 하며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았다. 리조트의 태국 식당 직원은 정말 태국에서 온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요리를 했다고 해서 남국의 작은 섬에 있는 식당에서 일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리조트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도 기억난다. 보면대 하나와 악기 하나를 갖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는데, 저런 직업이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부다비에서 본 수많은 외노자들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에어컨도 되지 않는 버스에 꾸겨 타고 공사장으로 향하던 많은 사람들, 가게서 일하던 사람들 등등. 그런데 실제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여행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도 앞으로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실 신혼여행 전의 일상도 결혼을 했다는 사실 덕분에 평소 같지는 않았는데, 되려 신혼여행을 오니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더 묘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후 달라졌던 환경에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어서인 것 같다. 여행에서는 밥그릇이 두 개인 것을 알아차릴 틈이 없으니 말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면서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상과는 다른 대응을 하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할 거라는 생각뿐 아니라 내 아내는 그러지 못할 거라는 생각 그리고 내 아내와는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이, 많이 희석되었다. 굳이 그렇게 한계지을 필요가 없는데 나는 무엇에 그렇게 겁먹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갑자기 아부다비에 가서 한국어 학원을 차리는 일처럼 우리 삶이 갑자기 변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기대된다.

7박 9일간 총 비용 KRW 7,518,218

KRW(원) 3,107,830 리조트
KRW 2,160,600.00 항공권
KRW 20,700 아부다비 이심
KRW 69,840 여행자 보험
KRW 153,200 오전 사막 사파리
KRW 34,260 휘발유
KRW 9,500 간식
KRW 5,900 1인 음료
USD(달러, USD 1은 약 KRW 1350) 5.00 간식
USD 1.00 팁
USD 2.00 팁
USD 3.00 팁
USD 2.00 팁
USD 2.00 팁
USD 2.00 팁
USD 76.56 PADI 라이센스 발급
USD 151.74 PADI 재활성화 교육
(USD 10 팁)
USD 2.00 팁
USD 3.00 팁
USD 15.64 스파 추가 비용(USD 200 크레딧 사용)
USD 3.00 팁
USD 113.89 다이빙 1회
USD 4.00 팁
USD 43.00 선물
USD 3.00 1인 음료
AED(디르함, AED 1은 약 KRW 350) 87.25 공항-호텔 이동
AED 118.00 점심
AED 75.00 이동 100 AED 크레딧(5회에 걸쳐 20씩 사용)
AED 11.15 반창고, 물
AED 5.33 호텔-셰이크 자이드 모스크 이동(AED 20 크레딧 사용)
AED 24.00 간식
AED 49.90 모스크 입장을 위한 머리 싸개
AED 2.50 물
AED 69.69 모스크-야스몰 이동(AED 20 크레딧 사용)
AED 16.35 간식
AED 135.00 저녁
AED 594.00 선물
AED 93.60 야스몰-호텔 이동(AED 20 크레딧 사용)
AED 48.85 1인 아침, 선물
AED 23.00 1인 음료
AED 111.00 점심
AED 25.67 호텔-Qasr Al Hosn 이동(AED 20 크레딧 사용)
AED 60.00 Qasr Al Hosn 입장
AED 65.00 음료
AED 757.00 선물
AED 5.91 Qasr Al Hosn-Qasr Al Watan 이동(AED 20 크레딧 사용)
AED 150.00 Qasr Al Watan 입장
AED 52.51 Qasr Al Watan-호텔 이동
AED 29.75 저녁
AED 66.43 호텔-공항 이동
AED 231.00 선물
AED 640.00 선물
KRW(원) 36,000 주차비

2 replies on “신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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