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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대학원생의 수기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2015년에 철학과 사람이 나에게 엽서 2장을 주었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란 만화에 나오는 장면이 인쇄된 엽서였다. 40살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만화가에 지망하기 위해 페스트푸드점에서 알바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다. 이 주인공은 만화 공모에 늘 미끄러지면서도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거나 정신 차리라는 아버지의 말에 화가 나서 가출한 뒤 공원에 앉아있다가 경찰에게 훈계를 듣는 시답지 않은 인물이다. 한 엽서에는 주인공이 만화를 그리다 말고 자기가 미래에 고독사할 거라는 울적한 독백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다른 엽서에는 자신의 인생 대부분은 실패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얼마 전에 기회가 생겨서 이 만화를 다 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만화가 끝날 때까지 데뷔하지 못하고 끝이 난다. 이름 알려질 정도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으니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라 마음이 들었다. 나는 만화를 읽으면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국 주인공은 데뷔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돼서 마음이 허전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보다 하찮아 보이는 일본 아저씨가 결국 일본 말을 모르는 내가 그의 만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성공하는 이야기가 나에게 희망적으로 다가와서 일 것이다.

자전적 이야기인 척하는 만화에 사기당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기억나는 말이 하나 있다. 계속 데뷔에 실패하는 주인공에게 편집자는 자기로 향하는 만화를 그리지 말라고 한다. 자기만 알아들을 수 있거나 자기에 대한 변명만 담겨있거나 혹은 자기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만화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충고다. 아마도 자기에게 흐르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잘 아는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생판 모르는 남보다야 쉬운 일이다. 자기를 아는 것이 가장 힘든 이야기되지만 이는 객관적으로 자기 주제를 파악할 때 해당하는 말이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남이 더 이해하기 쉽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더 해독하기 편하게 말하거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화에 대한 평을 덧붙이면 내가 이런 만화에 쉽게 낚이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만화의 거짓 이야기에 내가 속았으니, 적어도 남에게 이해를 구하는 측면에서는 잘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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