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가방

예비군 훈련에 가면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 나보다 어린데 결혼한 사람이 한둘은 꼭 있는 것도 좀 어색한 일이지만 신기하게 어디서 정말 말 안 듣는 사람들만 골라 온 것 같다. 어칠어칠하며 동네에서 껌 좀 씹는 형님의 느낌을 풍기는 사람도 참 많다.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치면 더워죽겠는데 거추장스럽게 보호장구도 차고 하니 정말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실전처럼 하라는 교관 아재의 외침은 뒤로하고 몇 걸음 걷고 총알을 다 소진하고 죽었다고 내려온다. 아 물론 개중에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여튼, 시베리아 횡단 철도 안에서도 어칠어칠하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예비군에서 본 아재들 같은 느낌? 다르게 표현하면, 왜 뉴욕의 마피아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상한 배색의 츄리링을 입고 낮에 거리를 배회하는 조직원들 있잖나? 카페에 앉아서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지들끼리 히히닥거리거나 결국 강도질인데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마냥 쑥덕거리거나 그런 사람들. 물론 열차 안에는 눈에 뜨이지 않는 사람이 많았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는 버스라도 탄 것마냥 갑자기 큰 소리가 나는 무리나 서로 눈짓하며 담배 피로 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이상하게 많았다.
예비군이 마피아같은 말도 아니고 고등학교 수행 여행 버스가 마피아 버스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떤 느낌을 전달해 보려고 한 거다. 뭔가 규율 잡히지 않고 헐렁한 느낌? 드라마나 영화에서 괜찮게 그려지는 사람에게서 잘 느껴지지 않는 성품? 그런 것들을 설명하려 했다. 물론 여기에는 마피아나 고등학생이나 예비군에 대한 내 잘못된 시선이 들어있다. 나는 그렇게 공명정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 느낌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면서 그런 편견들을 알아차린 것이 다행일 뿐이다.
내 편견이겠지만 먹을 것도 나누고 배터리 충전도 도와준 내 위 칸 아재에게도 그런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종착역의 지리를 잘 알아야 되는 건 아닌지, 내가 먼저 내려서 사라져야 하는지 혹은 이 사람을 먼저 내보내고 뒤늦게 보내야 하는지 같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 사람의 친구가 근처에 있을 때는 더 신경 쓰였는데 가끔은 무슨 작당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니 (이외에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복잡하니 패스)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는 나를 해칠 생각을 지녔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내가 문제에 빠지고 싶지 않은 욕구가 너무 커서 남에게 상처 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뭐 어찌 되었든 내일은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위 칸 아재는 더플백을 꺼내서 짐을 정리했다. 일을 찾으러 먼 거리를 가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그의 가방에는 포크에서 새제까지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그 가방을 보며 난 지금 들고 있는 가방이 거의 망가졌기에 인천에 도착하면 하나 살 생각을 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많은 것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여행의 느낌을 내볼까 하고 등산 가방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에서 사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의 마지막날에 튼튼하고 맬 수 있는 끈도 많이 달려 어디든 떠날 때 좋은 가방을 사면 꽤 의미 있는 일 아닌가? 비싼 돈 들여 여행하며 생각한다는 것이 가방 산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철이 없다. 자연농원 가서 기념품만 생각하는 꼬맹이에서 아직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예비군 아재들이 이상하다고 뭐라고 할 내가 아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