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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감자 퓌레를 나눔

사과 소년은 해가 어둑할 즈음 떠났다. 시간이 좀 더 시나고 위층 사람은 누워있었고 나는 마지막 남은 “도시락”을 먹었다. 이제 내일 아침에 인스턴트 감자퓨레를 먹으면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설국 열차에서 양갱같은 음식을 먹는 것에 비하겠냐마는 정말 인스턴트로 보낸 지난 시간과 좁은 3등 객실 거기에 추운 눈밭 위의 철도라는 점은 설국 열차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열차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조심스럽게 바닥을 찾는 위 칸 사람의 발이 보였다. 나도 재빠르게 잠자리를 돌돌 말아 위의 침대에 얹고 일층 침대의 가운데 부분을 들어 돌려서 탁자를 만들었다. 위층 사람은 자신의 더플백에서 먹을 것들을 꺼냈다. 빵은 지난 역에 정차할 때 새로 산 것인데 역시나 소꿉놀이에 있는 플라스틱 빵 맛이 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가 통에 담아온 요리가 상했다는 거다.
이미 얻어 먹은 게 있기는 하다만 꼭 그래서 내 감자 퓨레를 나눈 것은 아니다. 사과 소년도 위 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음식을 나에게 나눴는데, 사과 소년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글쎄… 내 음식을 나누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지 않았을까? 사과 소년은 자신을 남들 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도움을 꺼려하거나 도움받은 사실을 좋게 생각하지 못할 거라고 나에게 변명하지 않았을까?
이 지점이 사과 소년과 위 칸 사람을 보며 소통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덜 배웠다고 치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과 소년은 어느정도 배워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 내가 사는 문화에 대한 관심까지 있었던 것에 반해 위 칸 사람은 말이 통하기는커녕 음식도 재차 권하지 않고 쿨하게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생각을 더 명확하게 소통할 가능성이 높은 사과 소년이 아니라 원시적인 의사소통 밖에 할 수 없는 위 칸 사람이었다는 점을 보며 나는 언어나 매너 같은 소통의 도구가 아무리 잘 갖춰있어도 소통할 수 없을지 모르고 또 말과 문화가 아무리 달라도 공감할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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