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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관계

위 칸에 사람이 내리니 너무 편했다. 여태까지만 해도 나는 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니 때에 맞춰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테이블을 만들어 꼿꼿이 앉아있고 저녁이 되면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 앉아있는 것은 너무 힘들다. 좀 더 시간이 지나니 누워서 세끼를 다 챙겨 먹었다. 침대 방향이 열차 진행 방향과 같으니 편안하게 누워서 바깥풍경을 보며 졸리면 자고 대충 밥때가 되었다고 느껴지면 먹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간을 지킨다고 해도 하루에 한 번씩 시간대가 바뀌어서 저녁 먹었는데 또 저녁 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차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좋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바뀌는 것은 1시간이나 9시간이나 똑같이 충격이 온다. 그렇다고 정말 금수처럼 지낸 것은 아니다. 책도 읽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이북으로 챙겼고 무슨 정신에서인지 아인슈타인이 쓴 <<상대성이론>>을 종이책으로 챙겼다. 이북은 배터리가 부족해서 조금씩밖에 볼 수 없었으니 결국 <<상대성이론>>을 꽤 여러 번 읽었다. 물론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 책은 좋은 수면제였다.

그러니까 처음 위 칸에 탄 사람이 내리고 아직 내가 세 끼를 누워서 먹지 않을 때 위에 사람이 탔다. 그는 10대나 되어 보였는데 얼굴에는 낭패감이 보였다. 윗자리 사람은 다른 승객이라면 타자마자 했을 이부자리도 만들지 않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가 이불을 개놓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불을 위 칸으로 올리고 자리를 다시 마련해줬지만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하긴 이 칸에서 내가 제일 생경스러운 사람일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내 위 칸을 선택했으니……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리곤 정말 단 한 번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반나절을 누워있어서 죽었나 확인하고 싶었을 정도다. 복도 건너 마주 보는 두 개의 침대에는 모두 러시아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일 층에는 러시아 아짐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한 끼는 “도시락”을 까서 그 아짐 옆 테이블에서 먹었다.

복도 건너 아짐도 그와는 생판 모르는 사이일 텐데 나와 그의 거리보다는 그와 그 아짐의 거리가 마치 모자 관계처럼 가까워 보였다(굳이 여성을 명시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같은 피부색을 지나고 같은 나라 안에 살아도 이해하지 못할 신기한 사람 천지인데 다른 문화라면 오죽할까. 그러니 다름에 대해 이상하게 느끼거나 신기하게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 덮어두고 우린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게 동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이상하거나 열등하게 보이는 것을 애써 이성으로 억압하는 것은 병적 증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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