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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관광의 전형 – 아테네·나폴리·로마 1: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그림 81] 나폴리 박물관에 있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체위를 묘사한 모자이크
나폴리 박물관에 갔습니다. 문 닫는 시간이 19시라는 공지가 보입니다. 아테네의 박물관과 유적들이 16시나 17시면 문을 닫는데 이곳은 가게(?) 문을 더 늦게까지 여는 걸 보니 나폴리는 돈맛 들인 동네인 겁니다.

박물관 입장권에는 바코드가 있고 입장할 땐 지하철처럼 개찰기에 바코드를 찍고 들어가는데 아테네 공항버스에서처럼 굳이 직원이 개찰한 표를 찢어서 훼손합니다. 보통 서울에서는 절취선이 있는 입장권을 주지요? 절취선은 애초에 찢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겁니다. 제가 가진 표에 뭔가 표시하는 기억은 롯데월드에서 5가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이용권을 사용할 때뿐이에요. 내 표를 찢어 표시하는 건 정보를 저장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아르바이트 출퇴근 시간 찍는 것도 아니고 즐거움을 위해 한 번 간 박물관에 내가 다녀왔는지 아닌지 기억 못 할 리는 없어요. 그리고 표를 찢은 건 누구에게 부탁해 표를 얻은 다음에 제가 할 수 있으니 입장 증명이 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표를 찢는 건 저에게 아무 의미가 없고 박물관에만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제가 찢어진 표를 들고 다니는 건 제가 박물관에게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표를 찢는다고 무게가 늘어 힘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표를 찢어 정보를 표시하는 걸 보니 새삼 다른 문화에 왔다는 게 실감 납니다.

이 박물관은 특이하게 층과 층 사이에 낀 작은 층이 있는데 여기에는 성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집창촌의 벽화나 거기서 사용한 가구나 기구 같은 겁니다. 여러 명의 난교나 다양한 체위를 묘사한 모자이크를 보니 그때도 그랬다는 생각에 지금이 특별히 타락한 세상이라고 말하기 힘들어집니다. 지금 특별히 이상한 생각이 많아졌다기보다는 인간이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능력이 증대되어서 더 많은 것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접하긴 더 쉬워진 건 맞지만 유독 포르노만 그런 건 아닙니다. 포르노를 만들거나 찾기 쉬워진 것처럼 다른 지식도 찾거나 만들기 쉽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관심과 생각이지만 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걸 만들고 널리 퍼트릴 수 있게 된 것뿐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능력 말고는 사람이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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