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버스 탈 때 기사는 표를 보여달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자리에 앉으면 안 되고 버스 안에 있는 개찰기에 표를 넣었다 빼야 해요. 그럼 승차권에 날짜와 시간이 찍히게 됩니다. 아테네로 가는 중간에 검표원이 제 표를 보고 어귀를 찢었어요. 나중에 보니 제 표는 기계 깊숙이 넣지 않아 개찰이 되지 않아서 무임승차가 된 꼴인데 검표원이 단속하지 않고 어귀를 찢어 다시 쓰지 못하는 표로 만든 겁니다. 로마에서 낮은 등급 기차를 탈 때도 그랬습니다. 시간과 좌석이 적히지 않은 표에 펀치로 구멍 뚫어 개찰을 확인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훼손된 표는 유효하지 못한 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전 개찰과 검표가 분리된 게 낯설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미술관에 가든 박물관에 가든 개찰구가 입구를 막고 있는 형태입니다. 입장할 때 표를 확인하니 그 안에 있으면 개찰구를 뛰어넘지 않는 이상 다 값을 지불한 사람이죠. 그러니 굳이 안에서 검표를 하기보다는 입구 쪽을 더 신경 씁니다. 그에 비해 이 동네 공항버스는 입구에 신경 쓰지 않고 간혹 검표를 해요. 항상 입구에 신경 쓰는 것보다 싸게 먹히는 방법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무임승차하지 않는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검표 비용을 줄일 수 있어요.
둘 중 뭐가 더 좋은 방법인지 논증하진 못하겠습니다. 노르웨이 트롬쇠는 버스 안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도 있고 버스카드도 사용할 수 있는데 모바일 버스카드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앱을 까는 게 아니라 그냥 기사에게 화면 보여주는 게 전부였어요. 마음만 먹으면 나쁜 마음 먹은 사람이 공짜로 버스 타기 쉬운 방법이지만 복잡한 결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해요. 서로를 못 믿어서 시스템 구축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신뢰를 두터이 하는 쪽으로 사회가 나가는 게 더 마음에 끌리긴 합니다.
아테네 시내로 향하는 공항버스를 타고 잤습니다. 한밤이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온 동네에서 조는 건 제가 생각해도 좀 그렇습니다. 졸린 상태로 버스에서 내렸는데 늦은 시간이고 비까지 내리니 꽤 으스스했어요. 버스에서 내릴 때 저랑 같은 신발을 신은 발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발이 계속 절 쫓아와요. 점점 정류장에서 멀어질수록 인적이 드물어지는데도 마찬가집니다. 굳이 객지에서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니 발소리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죠. 어느 정도 가서 따라오지 않아서 안심했는데 결국 숙소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나랑 같은 신발은 길을 잃어버려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서로 데면데면 대하다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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