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73]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 본 아크로폴리스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근처 대로에는 할아버지들이 생각지도 못한 삐끼질을 합니다. 이 동네에서 나한테 말 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처음에는 적당히 바쁘다 하고 넘어갔어요. 그냥 심심한 할아버지들이 시간 죽이려고 말 건다고 봤어요. 할아버지들이 자꾸 저에게 말을 거니 나중에는 왜 말을 거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예를 배운 청년이고 하니 어른의 말을 경청했어요. 할아버지들은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상적인 내용으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한국의 지방 도시 이름을 나열하면서 친근감을 높이기도 하더군요. 어느 정도 말을 텄다 싶으면 결국 자신이 아는 바를 소개해 준다고 합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유적 위에 떠 있습니다. 아테네는 오래된 도시니 어디든 파면 고고학적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물관을 지을 장소 역시 발견된 유적지 손상을 최소화하려고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그림 74] 박물관 아래 놓인 유적지러시아에서부터 그랬지만 이번 여행은 눈 호강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도 참 잘 만들어진 물건들이 많아요. 그냥 흰색의 대리석 조각이 아니라 덧칠한 색을 복원한 조형도 볼만했습니다. 크게 관심 있게 살피지 않았으면 그리스 조각상을 채색 없이 대리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모습으로 알고 있을 뻔했어요. 다시 말하면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가서 몰랐던 걸 아는 즐거움 하나를 찾은 겁니다.
박물관의 동선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건축물 사방이 유리로 둘러 있고 실내는 절반이 나뉘어 있는데 한 면은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고 다른 한 면은 그렇지 않아요. 박물관에 입장해서 전시를 따라 맨 위층까지 올라가는 동안은 건물 외부를 둘러싼 유리 너머로 아크로폴리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와 동일한 규모의 내실 안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 안에는 아크로폴리스에 관한 전시물들과 아크로폴리스 조소에 관한 영상이 있어요. 밖으로 나가면 내실을 둘러서 아크로폴리스 내부 조소가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영국 박물관에 있는 원본의 복제품이고 몇몇은 되찾은 겁니다. 밖에 있는 조소를 보다가 내실 모퉁이를 돌면 갑자기 아크로폴리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나머지 전시는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건물 반대쪽을 내려가며 진행되어요.
[그림 75] 내실을 돌면 보이는 아크로폴리스이번 여행이 끝나갈 즈음 영국 박물관에 들러 아크로폴리스 내부 조소를 보았습니다. 영국 박물관에 아테네 유물이 있는 건 우리나라 문화제가 일본에 가 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 찝찝했습니다. 그런데 영국 박물관이 그리스보다 조소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심지어 친절하게 한국어까지 지원하는 걸 보니 씁쓸했습니다. 아무리 귀중한 거여도 가까이에 있고 늘 보면 소홀히 할 수 있어요. 어떤 것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거란 생각은 꼭 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익숙하니 더 자세히 보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기도 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일상적이어서 별것 아닐 거 같은 아크로폴리스에 관한 내용을 이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