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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관광의 전형 – 아테네·나폴리·로마 1: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그림 76] 제우스 신전 1
아테네에서 셋째 날 아침에는 전날 다 돌아다니지 못한 유적지를 좀 더 돌았습니다. 제우스 신전은 기둥 몇 개와 보만 남아 있는데 크기도 클 뿐 아니라 기둥머리 장식이 섬세합니다. 기둥머리는 멀리서 볼 때는 여러 선이 화려하게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세월에 무뎌져서 그렇게 날카롭게 선이 살아 있지는 않아요. 다른 유적들도 그렇지만 역시 제우스 신전도 일단 크기에서 먹어줍니다. 크다는 건 꽤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 쳐도 작았다면 자연의 풍화를 견디기 힘들어요. 그리고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해도 일자무식이면 귀중한지 모를 겁니다. 일단 엄청 크니까 있어 보이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게 할 겁니다.

[그림 77] 제우스 신전 2
제우스 신전에 왔을 때 비가 왔습니다. 하늘은 엄청 파란데 멀리서 비가 다가오는 게 보였어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해쳐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걸어갔습니다. 걷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골목길을 걷는 것도 저에겐 꽤 흥미로운 일이에요. 거리에는 복권 파는 할아버지들이 있고 양말 노점도 있습니다. 국립 박물관으로 점점 다가갈수록 그리스 경제가 맛이 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도시가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게 보입니다. 여기저기 상점은 문을 닫고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도 온통 낙서투성이지요. 값이 싸서 이 박물관 근처에 숙소를 잡으려 했다 말았는데 참 다행인 일입니다. 하기아 소피아에 가지 않은 것도 비슷하게 다행일 수 있어요. 그리고 아테네 시내는 배수가 잘되어 있지 않다. 비 조금 오니까 온도로가 물바다가 됩니다.

[그림 78] 양말 노점
아테네 국립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국립이라는데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정원은 낙서로 너저분하고 치안이 불안한지 여기저기 무장한 경찰이 있어요. 전체를 보지 않고 화장실만 봐도 대강 건물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지요. 화장실 소변기는 저격수가 아니면 이용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고 대변기는 커버가 다 어디로 날아가 버렸어요. 그리고 변기는 아메리칸 스텐다드라는 제작사와 이름이 앞만 같은 무슨 무슨 스텐다드라는 회사의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충격스런 화장실이예요.

박물관의 전시물은 괜찮습니다. 특히 많은 종류의 도기를 보았어요. 보는 눈이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여행에서 특별히 한 거라곤 박물관 돌아다니는 거였고 눈이 좋은 것들로 폭행당하다 보니 좋은 게 조금 구별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도기는 일부러 멍청하게 그린 건 아닌지 싶을 정도로 대충 만든 게 보였어요. 개중에는 정말 미세한 선까지 신경 써서 만든 도기도 있습니다. 돋보기 아래 전시한 도기 조각 하나는 사람 얼굴만 겨우 보였는데 정말 잘 만들어졌을 거란 상상이 충분히 됩니다. 고대 선문자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어요. 궁금했을 때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될 걸 귀찮아하다가 이렇게 힘든 발걸음을 해서야 선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보통 볼 수 있는 유적은 부분뿐이고 전체를 보긴 힘든데 고대 아테네의 실내 공간을 재현한 규모 있는 전시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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