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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관광의 전형 – 아테네·나폴리·로마 1: 폼페이

[그림 84] 바닥 모자이크
나폴리에 도착한 다음 날에 폼페이로 가는 사철을 탔습니다. 사철은 저에게 참 생소한 단어예요. 얼마 전만 해도 제가 주로 접하는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는 민간이 투자한 노선이 없었지요. 더 멀리 가는 기차 노선을 생각해도 사철이 없지요?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이 만든 노선은 없고 정부 자금이 들어간 회사에서 운영하는 노선이 있네요.

폼페이에 가기 위해 탄 철도는 너저분합니다. 눌러붙은 껌과 낙서가 승강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요. 열차 안에서는 개가 미친 듯이 짓습니다. 객실 한편에서는 구걸하고 또 한편에서는 여행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로 시끄러워요. 폼페이에 가면서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열차 안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돈을 받기 위해 연주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탬버린을 빼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어요. 나쁘게 생각하면 이 동네는 구걸도 참 쉽게 합니다. 폼페이 매표소에서도 일 쉽게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표를 끊기 위해 한참이나 기다린 이유는 창구 직원이 거스름돈이 없어서 손님에게 잔돈을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손님에게 잔돈 내놓으라는 장면은 남유럽 사람들을 설명하는 어떤 만화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손님이 왕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해보니 정말 화병 나는 일이에요. 고객 응대가 너무 어설프다는 생각에 어딜 가나 장사꾼의 마음은 같다는 생각에 약간 금이 갔습니다. 하지만 돌무더기 하나 보려고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오는 사람이 수두룩하니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니 역시 장사꾼의 마음은 세계 공통이라고 봤어요. 가능한 많은 걸 얻어 내는 게 장사이니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상황에서 굳이 친절할 필요가 없겠지요.

반나절만 보고 해가 떠 있을 때 로마로 가려 했는데 욕심을 못 버리고 하나라도 더 눈도장 찍으려 해서 온종일 폼페이에 있었습니다. 뭘 그렇게 보고 다녔는지 기록도 하지 않았네요. 공책에는 모자이크가 멋지단 말만 있어요. 벽화든 모자이크든 여기서 본 복제품들이 나폴리 박물관에서 본 것보다 낫습니다. 그림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공간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지요.

폼페이에 있던 가구나 창은 화산재에 묻혀 다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타버린 부분은 비어있어서 여기에 석회를 부으면 사라진 원래 모습이 나타난다. 문과 창을 뜬 석회 덩어리를 원래 자리에 보존해 놓은 집은 비록 나무 같은 처음 재료는 아니어도 충분히 그 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림 85] 석회를 부어 복원한 창문
골목의 낙서까지 소중히 생각하고 보존처리한 것도 마음에 듭니다. 폼페이 발견 초기에는 눈에 띌만한 보물만 챙기느라 훼손된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하찮은 낙서도 보존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 소외된 것들도 신경 쓰는 걸 보여주지요. 관람 동선 끝으로 가면 아직 발굴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폼페이를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생각하면 폼페이의 지층을 선택하고 나머지 지층을 걷어내는 건 하찮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사실 별로 주의 끌지 못할 하찮은 유물이 발견되었다면 폼페이 같은 대규모 발굴을 하진 못 할 겁니다. 그러나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면 관심받지 못한 불행한 나머지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중요하게 보이는 것과 하찮은 것 사이 어디에 중심을 놓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 중심이 되는 것에 집중할 때와 하찮은 걸 생각해야 할 때를 선택하고 살아야 할 텐데 어떻게 기준을 세울 수 있을지 고민스럽습니다.

[그림 86] 보존한 담장의 낙서
[그림 87] 아직 다 거두지 못한 지층
폼페이를 나오면서 보지 못한 게 있을까 아쉬워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닥의 감촉이나 벽의 느낌도 혹시 놓친 게 있나 다시 만져봤고 눈에 익지 않은 곳은 되돌아봤어요. 물론 되돌아간 곳은 다 이미 본 곳이지요. 어차피 다시 정리하는 지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는데 뭐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한 걸 보면 아직 나는 욕심이 많습니다. 좀 좋게 말하면 아직 호기심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폼페이에서 로마로 가는 길은 로마에서 폼페이로 온 길의 반대입니다. 내려올 때 보이던 풍경이 보이는 쪽에 앉았습니다. 반대쪽에 앉으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겠지만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듯 같은 걸 반대로 방향으로 보면 새롭게 눈에 띄는 거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게 보이기도 하니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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