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논어>>를 샀다. 철학과에 다녔는데 <<논어>>를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 한문 시간에 본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교양 시간에 봤으면 쭉 읽었으면 좋았을 걸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다 읽지 못한 것은 참담한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잘 팔리는 <<논어>>를 집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굳이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열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샀다. <<논어>>를 산지 거의 한 달이 지난 시점까지 난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가 최근에 와서야 문제를 알아차렸다.
우리가 선비라고 말하면 유학이나 성리학이 떠오른다. 공자나 맹자가 있은 지 한참 뒤에 나온 성리학은 공자와 맹자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주희라는 사람이 성리학을 정리했는데 성리학의 교과서와 비슷한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대한 여러 해설과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기도 했다.
나는 <<대학>>을 한 학기 동안 배웠고 사서를 주희가 주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대학>>을 배웠다고 했지만 강의에 쓰인 책은 <<대학집주>>인데, 순전히 <<대학>>의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절구절마다 있었던 여러 해설과 자신의 해설을 정리한 책이다. 성리학을 정리한 사람이 모으고 만든 해설이 안 중요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대학>>만 보지 않고 <<대학집주>>를 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논어>>를 사면서 <<논어집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정말 천둥벌거숭이처럼 <<논어>>만 검색해서 <<논어>>만 보고 왔다. 아, 대학 다닌 3년을 생각하니 원통하다.
1 reply on “『논어』 구매의 원통함”
『대학집주』가 아니라 “『대학장구』다. 더 원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