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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아침에는 어제 다 돌아다니지 못한 유적지를 좀 더 돌았다. 제우스 신전은 기둥 몇 개와 보만 남아있는데 크기도 클 뿐 아니라 기둥 머리 장식이 섬세하다. 멀리서 볼 때는 여러 선들이 화려하게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세월에 무뎌져서 그렇게 날카롭게 선이 살아 있지는 않다. 다른 유적들도 그렇지만 다들 일단 크기에서 먹어준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 쳐도 작았다면 자연의 풍화를 견디기 힘들다. 그리고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해도 일짜 무식이면 어디 귀중한지 알겠나? 일단 크니까 좀 있어 보이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제우스 신전에 왔을 때 비가 왔다. 멀리서 비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걸어갔다. 걷기에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길을 걷는 것도 나에겐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크게 뭔갈 아는 건 아니다. 거리에는 복권 파는 할아버지들이 있고 양말 노점도 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상인의 마음은 같다. 국립 박물관으로 점점 다가갈수록 그리스 경제가 맛이 갔다는 걸 알 수 있다. 도시가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게 보인다. 여기저기 상점은 문을 닫고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도 온통 낙서투성이다. 값이 싸서 근처에 숙소를 잡으려 했다 말았는데 참 다행이다. 하기아 소피아에 가지 않은 것도 비슷하게 다행일 수 있다. 이상하게 지멘스에서 만든 신호등을 쓴 게 기억난다. 아 그리고 아테네 시내는 배수가 꽝이다. 비 조금 오니까 온 도로가 물바다다.
나름 국립 박물관이라는데 상태가 안 좋다. 정원도 낙서로 너저분하고 치안이 불안한지 여기저기 무장한 경찰이 있다. 전체를 보지 않고 화장실만 봐도 대강 건물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다. 화장실 소변기는 저격수가 아니면 이용하기 힘들정도로 아주 작다. 대변기는 커버가 다 어디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아메리칸 스텐다드라는 제작사와 이름이 앞만 같은 회사의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좀 충격과 공포스런 화장실이다.
박물관의 전시물은 괜찮다. 특히 도기를 많이 봤다. 정말 대충 만든 것부터 잘 많든 것 까지 그리고 많은 종류가 있다. 보는 눈이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여행에서 특별히 한 것이라곤 박물관 돌아다니는 거여서 눈이 좋은 것들로 폭행당하니 좋은 것이 조금 구별된다. 고대 선문자에 대한 설명도 괜찮다. 궁금했을 때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될 것을 귀찮아하다가 이렇게 힘든 발걸음을 해서야 선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고대 아테네의 실내 공간을 재현한 전시도 꽤 괜찮았다. 사실 보통 볼 수 있는 유적은 부분뿐이고 전체를 보기는 힘들잖나.
이제 아테네에서 하려고 한 짓은 다 했다. 여전히 허리도 아팠다. 시간도 남고 해서 리카비토스 언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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