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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로 여행하고 싶다면, 오큘러스2

작년 11월에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실행 영상을 봤다. 그전에도 VR을 경험해 보기는 했다. 기어VR이 처음 나왔을 때 몇 초 써봤다. 눈앞에서 남자가 불붙은 막대기를 들고 흔드는 영상이 보이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다음 기억은 궁평동 박물관에 설치된 VR이다. 이것은 컨텐츠가 좀 나았지만 놀라움을 주지는 못했다. 내 기억에 두 기계 모두 3축만 인식하는 기기였다.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은 인식하지만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기계다. 눈앞에 해상도가 낮지만 큰 화면이 있는 것 이상의 경험을 주지 못 했다. 그런데 알릭스 실행 영상은 좀 달라 보였다. 가장 큰 차이는 6축을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고개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몸의 움짐임도 인식한다. 사용자가 움직이면 게임 케릭터도 따라 움직인다. 정말로 게임 안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또 손의 압력까지 감지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한 번 VR 기계를 가까이 두고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큘러스 퀘스트2를 샀다.

퀘스트2를 뒤집어쓰고 몇 가지 설정을 끝낸 뒤 튜토리얼 격인 “퍼스트 스텝”이라는 앱을 실행시켰다. 명암이 분명하고 단순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리 현실 같은 그래픽이어도 모니터로 보는 화면은 정말 현실이 아님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런데 퀘스트2 속 단순한 그래픽은 정말로 내가 그 안에 있는 느낌이 났다. 그 뒤로 손에 쥔 컨트롤러를 이용해 여러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앱 안의 상자를 컨트롤러를 이용해 쥘 때는 사실 내가 허공에 손짓하고 있는 것이지만 정말 물건을 만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퀘스트2를 사용한 뒤 며칠은 현실이 현실 같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메트릭스에서 깨어난 네오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 같다. 현실 같지 않은 시각적 자극만으로도 현실 같은 경험을 해보니 내가 믿는 현실이 VR보다 더 실재하는 세계라는 믿음이 흐트러지게 된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퀘스트2의 그래픽은 썩 좋지 못하다. 데스크탑처럼 엄청 큰 연산장치를 심기에는 퀘스트2는 너무나 작은 기계이고 심지어 베터리를 사용해서 전력마저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니 대작 게임들의 현실 같은 그래픽을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허접한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물건을 집고 던질 때 나는 단순히 허공에 손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다르게 아무런 물리적 저항도 없는 손짓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 물건들을 잡고 던지는 느낌이 난다. 이런 경험을 하니 내 감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속여질 수 있는지 세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세계가 정말로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메트릭스처럼 정말 있는 내 몸은 전극이 연결된 채로 어딘가에 누워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VR의 현실감을 잘 이용한 게임이나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영화도 많지는 않지만 충분히 즐길만큼 있다. 몇 가지 앱을 실행해고 VR이 보편화되면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상당히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평면 화면으로 보는 콘텐츠는 시시한 것이 되고 아재들의 향수를 자극할 때나 쓰일지도 모른다.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VR도 상당히 기대된다. 특히나 3D 모델링 같은 경우는 꾀 직관적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더는 여러 시점의 뷰를 한 모니터로 보면서 마우스를 섬세히 움직일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데로 손을 움직이고 고개를 돌려가며 그리면 된다. 하지만 모델링 툴들의 인터페이스가 약간은 모자라다. 누군가 참신한 인터페이스를 선보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장점이 많지만 퀘스트2를 쓰며 불편한 것도 꽤 있었다. 일단 멀미다. 내가 멈춰있는데 화면이 움직이면 멀미가 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기는 하다. 움직임이 있을 때는 시야 주위로 테두리가 생긴다거나 텔레포트 하듯이 갑자기 시야를 이동하면 멀미가 줄어든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들이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은 눈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장시간 착용하면 눈이 아프기도 하고 퀘스트2에 달린 렌즈의 광학 성능이 떨어져서 화면이 잘 보이는 구간이 너무 좁다. 또 시선을 렌즈의 중앙이 아니라 주변으로 돌리면 화면이 흐리게 보인다.

화면이 잘 보이는 구간이 좁다는 것은 잘 착용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차는 과정이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번잡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무선 기계도 이렇게 번잡스러운데 유선 기계를 찰 엄두도 안 난다. 이 번잡스러움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VR이 더 발전될 것 같다.

여러 단점이 있지만 난 퀘스트2에 긍정적이다. 이런 가격에 이런 물건을 들이니, 세삼 내가 좋은 시대에 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만약 퀘스트2 구매로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한번 사보라고 강하게 추천한 것이다. 사고 난 뒤 금방 질리거나 불편해서 쓰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환불하면 그만이니까. 사실 며칠 쓰다가 고장 나도 구매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가격을 지불하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눈을 질끈 감고 비행기 표를 구매하듯이 오큘러스2를 구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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