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공항 전망대에 비행기 구경을 갔어요. 한 시간도 넘게 활주로를 넋 놓고 보다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비행기를 봤으면 지금 내 모습이 조금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뭐 엄청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비행기처럼 큰 걸 봤으니 그만큼 생각도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실제로 본 움직이는 가장 큰 건 기차입니다. 무정차 통과하는 새마을호를 봤는데 그 무거운 게 어찌나 빨리 달리던지 승강장에서 어머니에게 열차에 못 타겠다고 징징거렸어요. 타고나니 기차가 별건 아니더라고요. 그 뒤로 차에서 기차를 볼 땐 크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실제로 기차는 얇고 길지 크진 않기도 하고요.
그 뒤로도 전 비행기랑 별로 연이 없었어요. 비행기를 개조한 식당 정도가 비행기에 가까이 가본 기억일 겁니다. 단독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도 병역 때문에 여권 발급이 번거로워서인지 비행기와 연이 닿지 않았어요.
그러다 별 목적 없이 광저우에 가게 되었어요. 특별히 준비하고 간 건 아닙니다. 학기가 끝났는데 삼촌이 있는 중국에 한 번 다녀오라는 말이 나와서 가본 거죠. 전 광저우 가는 길에 작동하는 비행기를 처음 대면했어요. 인천공항 면세 구역은 천장이 높고 기둥이 적지요. 또 한 면은 통유리인데, 그 큰 창으로 본 비행기는 그냥 정말 컸어요. 저는 창밖에 돌아다니는 큰 비행기들을 넋 놓고 구경했죠.
그리고 곧 저도 그런 비행기에 탔어요. 제트 엔진 두 개는 그 많은 사람들을 하늘로 들어 올렸지요. 이륙할 때 양력을 더 만들기 위해서 날개에 있는 플랩이란 장치가 펼쳐져요. 비행기 크기에 비하면 플랩은 종이처럼 얇아 보입니다. 빨리 달리면서 생기는 저항에 날개와 플랩이 바람에 종이 흔들리듯이 떨리기까지 해요. 그런데도 비행기는 땅과 멀어집니다.
어렸을 때 비행기에 탔다면 비행기나 자동차나 별반 다를 게 없을지도 몰라요. 따지고 보면 자동차도 엄청 신기한 물건인데 전 어렸을 때부터 본 자동차는 별로 신기하지 않거든요. 뻔한 이야기지만 내가 살아있는 건도 엄청 신기한 일인데 늘상 놀라면서 살진 않으니까요.
제가 처음 비행기에 탈 땐 비행기가 왜 날 수 있는지 이미 알았어요. 종이비행기가 나는 이유와 민항기가 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다르진 않아요. 그런데 평소에 생각하지 못한 큰 비행기를 보는 순간, 머리는 합리적으로 비행기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데 가슴은 그렇지 않더군요.
비행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역학이나 공학 분야 지식은 한 번 보고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전 크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봐요. 비행기랑 자동차가 있는데 둘이 같다거나 자동차가 크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또 생각하지 못한 큰 것을 봤을 때 드는 느낌도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예컨대 저는 엄청 높은 성당에 들어간다거나 거대한 현대 미술 작품을 갑자기 보게 되면 일상에서 마주하지 못한 감정을 느껴요.
생각지도 못한 큰 것을 볼 때 드는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은 그 큰 걸 두 번째 볼 때는 좀 약해져요. 익숙해지는 거죠. 뭐든 처음이 어렵죠. 자동차가 놀랍지 않은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큰 것도 자주 보면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게 되죠. 그러니까 엄청 큰 걸 볼 때 드는 감정은 제 생각의 한계가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되는 느낌인 거죠.
제가 유치원 다닐 때 비행기를 봤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많은 부분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을 거란 말을 하고 싶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했네요.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제가 비행기를 봤다면 굳이 한국에 방안퉁수처럼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나는 할 수 없다면서 기죽었던 많은 일들이 한 번 해볼 만한 일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어렸을 때 비행기 한 번 보는 게 얼마나 큰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생각도 못한 걸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의 경계가 넓어지는 경험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고 봐요. 한 번도 비행기를 안 봐도 비행기를 본 저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이론으로 비행기를 접한 사람은 비행기가 뜨는 걸 직접 목격할 때 드는 그 묘한 변화를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많은 사료를 가지고 있어도 과거를 정확히 재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