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일본에 다녀왔다. 교토에 갔는데 근처 오사카에 들러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 몇 개를 찍어 보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사촌에게 그를 소개 시켜줬다. 사촌은 뮤지엄 산에 있는 그의 건축뿐 아니라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건축도 몇몇 답사한 걸로 안다. 나는 서울에 있는 그의 건축인 재능문화센터도 들려보지 못했다. 참 멋쩍은 일이다.
안도 다다오를 처음 들은 건 건축과 강의실에서였다. 일본에서 학위를 받은 강사는 그에 대해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곁들이며 한 강의 시간을 다 소비했다. 오모테산도 힐즈나 록고 집합주택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학기가 끝나고 잠시 일한 건축사무소에서 그가 복싱 선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그는 건축 전공자도 아니었다. 복싱을 하다 건축에 꽂혀 독학했고, 화물선을 타고 유럽을 돌아보고, 르꼬르 뷔제의 작품집을 들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건축과 멀어지면서 안도도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다 철학과 입학 준비를 마친 겨울에 다시 그가 생각났다. 안그라픽스에서 나온 그의 자서전인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란 책을 한 권 사서 읽었다. 사실 원서 제목에는 “나”가 없다. 그런데 나는 “나”가 포함된 국역서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건축가로 꽤 성공한 사람이 “나, 건축가 누구”라고 말하는 건 자신의 삶을 누구나 알만한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거니 부럽기까지 하다. 비슷한 제목으로 <<김성근이다>>가 있는데 이 제목을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반문하게만 된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좀 더 자세히 나눠 보면 “나”는 그 자신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건축가”와 “안도 다다오”가 있다. “안도 다다오”는 나라고 지칭하는 그의 이름이다. “건축가”는 뭐 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철학자들이 하는 말보다는 명확히 생각할 수 있는 단어다. 억지 좀 쓰면 나는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아니라 “건축가 안도 다다오”로 읽힌다. 그러니까 “안도 다다오”는 그의 말처럼 긴장을 지속하며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