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아직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내가 사는 곳부터 동해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휴가도 구월 말로 잡았다. 여름에 걷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내린천에 있는 어떤 동굴에 다녀온 뒤에 더 굳어졌다. 동굴에 가는 동안 본 길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몽골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광활한 사막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생각하는 와중에 가끔 하던 데로 “스카이 스캐너”에서 가장 싼 항공권 검색을 했다. 전에 보이지 않던 세부가 보였다. 그러자 예전에 배우려다 실패한 스쿠바 다이빙이 생각났다. 이미 다이빙을 배운 사촌 형은 세부보다는 보홀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나는 보홀이 보호 기간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보홀에 갈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보홀행 항공권이 세부행 항공권과 비슷한 가격에 있었다. 그렇게 다이빙을 배우러 보홀에 가게 되었다.
다이빙을 배울 곳을 결정하는 과정은 꽤 지난했다. 연락을 주로 카톡으로 했는데, 다들 낮에 다이빙을 가서인지 저녁이나 되어서야 답장이 왔다. 큰 가게들은 빠르고 친절하게 답을 주었지만 위치가 애매하단 생각을 했다. 나는 여행을 가서 택시와 흥정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다이빙 샵들이 번화한 해변에서 크게 떨어져 있어서 택시나 트라이시클을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보홀은 우버같이 차량을 부를 수 있는 앱인 그랩도 되지 않았다. 바다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해변에 가까운 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동이 영 불편한 것도 그렇지만 샵들이 세 끼를 한식으로 제공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나라까지 가서 한식을 먹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 와중에 아침과 점심만 제공하는 샵이 있었다. 심지어 주인장도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고 건조해서 마음에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나치게 호의적인 가게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결정을 했지만 샵의 정확한 위치도 몰랐다. 지도를 아무리 봐도 샵이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해변까지 바로 나갈 길도 보이지 않았다. 숙소도 샵 바로 앞에 있는 외부 숙소를 써야 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더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이빙을 미친 듯이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숙소 상태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해변이 가깝다는 말이 거짓이지만 않으면 되었다.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할 힘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마냥 일주일 동안 뒹굴거리며 집에 있는 것은 허송세월한 내 지난날을 답습하는 것 같아서 죽도록 싫었다. 그렇다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를 갔고 바다는 실컷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여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나였으면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았다.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서 시간을 질질 끌고 어영부영하다가 어쩔 수 없이 결정한 면도 있다. 또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했다면 후회하지 말아야 하는데, 헤난 리조트가 육만 원에 올라온 것을 예약을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놓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출발이 다가왔다. 가방을 그날 싸고 잠들었다. 오랜만에 새벽에 나와 택시를 탔다. 스노보드를 타러 다닐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새벽같이 나와 스키장 셔틀버스를 타러 갔었다. 기분이 좋았다. 운전석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공항 가는 길을 지켜볼 생각도 했다. 이번 여행은 지난 여행과 성격이 크게 다른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번에는 예측에서 어긋날 것들이 없었다. 동남아로 쉬러 가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냔 말이다. 하지만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내 예상은 빠그라졌다. 코로나 이후로 공항버스 배차가 줄어서 버스에 자리가 없었다. 입석도 안 된단다. 가장 가까운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 것도 안 된단다. 그래도 기사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민속촌 앞에 가면 탈 수 있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민속촌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다.
보홀에 도착한 당일에는 별일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비행기 안에서 바짝 말라버린 손을 알아치린 일이다. 몸이 점점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한 사람이 느긋느긋하게 검역하는 꼴을 보니 동남아에 왔다고 체감했다. 나와 카톡으로 이야기했던 샵 주인장은 점심을 먹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점심을 먹고 이론 교육을 했다. 5시간 정도 되는 비디오를 보고 몇 차례 문제를 풀고 시험을 봤다. 주인장이 저녁 먹을 곳을 몇 곳 추천해줘서 가장 가까운 타이 음식점에 갔는데 물가가 한국과 비슷해서 놀랐다. 콜라와 쌀국수를 먹으니 구천 원 정도 되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어제부터 나던 빗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되었다. 야자수가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면 빗소리가 났다. 소리는 나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상당히 황당했는데 야자수 잎 소리였다. 다이빙 수업은 오전에는 수영장에서 기초적인 기술을 배우고 오후에는 바다에 나갔다. 저녁은 맥도날드에서 먹었는데 가격은 한국과 비슷했다. 감자튀김을 그릇에 담아주는 것만 달랐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물속에서 소리를 들어봤다. 또 물속에서 눈도 떠봤다. 수영장에서 슈트를 입고 둥둥 떠 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미 어제 이론 공부할 때 알았지만 물속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고 물속에서 모든 게 크게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물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데 참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닷물을 몇 번 먹으니 민물의 소중함을 알았고 호흡기로 호흡을 하니 편안하게 숨 쉬는 일이 정말로 감사한 일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이날, 왜 다이빙 샵들이 세 끼를 제공하는지도 알았다. 필리핀은 내가 가본 동남아 국가인 베트남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다. 베트남에서 휴양지인 다낭이 아니라 하노이를 가보아서 직접 비교는 무리지만, 베트남은 자국 문화가 있는 반면에 필리핀은 원래 있었던 것들이 철저히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이건 필리핀 선생과 전화 영어를 할 때도 살짝 느꼈던 것이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였다. 그래서 자기들이 쓰는 말에 스페인어가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간혹 선생이 그런 단어를 말하고 내가 알아듣고 스페인어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그러면 종종 선생은 그 말이 스페인어인지 전혀 몰랐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따갈로그어로 사과는 스페인어로 사과와 발음이 상당히 유사하다. 여기와서 안 사실이지만 지명에도 스페인어가 널려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지명이 일본식으로 바뀐 것과 비슷할 것이다.
저녁거리를 찾으며 이 동네의 문화가 훼손되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이 동네는 뭘 먹는지를 모르겠다. 결혼식 같은 때 먹은 음식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고상한 것들 말고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뭔지를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먹을 수 있는 몇백 원 하는 쌀국수 같은 음식이 없다. 그냥 밥에 뭔가를 추가하면 이 동네 음식이 되는 것 같다. 밥에 꼬치라던가 밥에 치킨이라던가 그렇다. 다만 필리핀 체인인 졸리비는 맥도날드보다 훌륭하다. 사람이 탈을 쓴 거 같은 기괴한 인형이 마스코트인 식당인데, 햄버거도 팔고 스파게티도 팔고 심지어 서빙도 해주는, 페스트 푸드와 페밀리 레스토랑 중간 느낌의 식당이다. 여기서도 치킨에 밥을 곁들인 음식을 판다.
졸리비의 직원들이 서로 장난치며 일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퇴근할 때도 아주 반갑게 배웅했다.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어린 여자들이었다. 과로에 찌든 한국의 알바들보다는 행복해 보였다. 반면에 거리에서 종종 늙은 백인 남성과 정말로 어린 필리핀 여자가 같이 다니는 것을 볼 때는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중에는 중고등학생 정도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변에서 나에게 “곤니치와”라고 외치며 시비를 걸던 십 대를 만난 것이다. 뭔가 문제를 인식하고 울분이 있으니 외국인을 조롱하지 않았을까?
여느 관광지처럼 해변은 호객하는 상인들로 넘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한두 번 물어볼 뿐이고 무시하거나 싫다고 하면 더 이상 따라오지는 않는다. 해변 근처에 사유지가 있는 것도 신기했다. 배를 타기 위해 돌호 해변을 갔는데 울타리 때문에 차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또 해변 그늘에는 꼭 해먹이나 긴 의자가 있고 중년을 넘긴 남성들이 널브러져 자는 걸 볼 수 있다. 하얀색 해변은 정말로 아름다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산호가 으스러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너무 고와서 진흙처럼 신발을 먹는다.
셋째 날에는 파도가 좀 거셌다. 둘째 날도 바다에서 머리 뒤로 치는 파도가 상당히 무서웠는데, 셋째 날을 경험하니 둘째 날은 정말로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였던 것이다. 이날 세 번의 다이빙을 하기 전까지 여섯째 날에 뭘 할지 결정하지 못했었다. 다이빙을 배우는 과정이 그렇게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이빙은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 중에 가장 위험한 일이다. 까딱하면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오는데 스트레스가 없을 수가 없다. 특히나 교육 과정에서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강사가 옆에 있어도 실제로 극심한 공포가 느껴진다. 바닷속에서 마스크를 벗거나 호흡기를 갈아끼거나 하는 일들이 상당히 무섭게 다가오고, 공기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 호흡하지 않고 상승하는 일도 상당히 두려웠다. 그리고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물과 별로 친하지 않다는 것이다. 뒤통수로 파도가 치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 나는 다이빙을 끝내고 여섯째 날에도 다이빙을 더 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물과 친해지면서 제어할 수 없을 것 같던 공포 상황이 대처할 만 해졌기 때문이다. 과호흡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잠시 호흡을 고르면 이내 진정이 되었다. 심지어 바닷속에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래서 이대로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을 리조트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에는 너무나 아쉽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정말로 잘 결정한 것이다.
좀 더 말하면, 나는 기술에 상당히 친화적인 사람이고 스쿠바는 장비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 이내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마스크를 벗는 순간, 호흡기를 물고 있어서 절대 죽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내 몸은 물 밖에 있었다. 얼굴 전체에 물이 닿으니 호흡기를 물고 있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웃긴 것은 마스크를 벗으면 눈을 감지도 못 했다. 남들은 눈을 못 떠서 힘들다고 하던데 나는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죽어도 왜 죽었는지 알고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이빙 선생은 꽤나 인내심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내 몸이 호흡기를 물고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사십 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은 하늘이 맑았다. 다이빙을 하러 온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러 나갔다 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정말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가 망고 스무디로 바꾸었다. 혹여 내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다이빙을 하지 못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쏟아지는 별에 취해 침대에 누우니 세상이 핑핑 돌았다. 호흡을 들이마시면 물속에서처럼 내 몸이 뜰 것 같았다.
다음날도 세상이 똑바르지 않았다. 물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물어보니 육지 멀미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이빙을 하러 배를 한 번 타니 괜찮아졌다. 이날이 넷째 날인데, 아직 두려움이 있었지만 즐거움이 그 두려움을 누르는 상태가 되었다.
다섯째 날에는 발리카삭에 갔다. 아주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라고 한다. 사촌 형이 보홀로 가라고 한 것도 발리카삭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 나는 발리카삭에서 봐야 할 것을 다 보았다. 잭피쉬 떼를 보았고 바라쿠다 떼도 보았다. 거북이도 물론이다. 저녁에는 나이트 다이빙을 했는데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라이트를 끄고 손을 휘저으면 플랑크톤이 빛난다. 라이트를 끄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우주 속에 있는 것 같았는데 손을 휘저을 때 빛이 나니 별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저녁에는 내 다이빙 선생을 겸한 샵 주인장과 해변에서 맥주를 몇 잔 마셨다. 중간에 한 사람이 더 합석했다. 오징어튀김이 아주 훌륭했다. 이 동네에서 오징어는 기본적으로 갑오징어를 가리킨다고 한다. 여튼 주인장은 나를 가르치면서 나이트 다이빙을 꼭 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교육 과정에서 다른 선생과 시간이 맞지 않으면 자신이 무료로라도 해준다고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어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한 사람이 내다보면 개미지옥에 빠진다고 마다했다.
여섯째 날은 다이빙을 한 마지막 날이다. 다이빙을 하고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없기 때문에 보홀에서 마지막 날은 그냥 리조트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이날도 발리카삭에 갔다. 그리고 어제 본 것보다 더 큰 잭피쉬 떼와 바라쿠다 떼를 보았다. 너무나 아쉬워서 발리카삭에서 잠시 쉴 때 스노클을 물고 바닷속에 있었다. 거북이를 한참이나 쫓았다.
리조트로 숙소를 옮기고 있는데, 한국에서 뭘 하다 왔는지, 또 언제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눈을 감으면 바닷속 같았고 바닷속에서 사용한 수신호가 머리속에 떠다녔다. 여전히 숨을 들이쉬면 내 몸이 둥실 뜰 것 같았다. 저녁에는 전날 먹은 오징어튀김이 아쉬워 그 가게 앞까지 갔으나 시끄러운 분위기가 싫어서 또 메뉴에 있는 음식이 아니어서 시키려면 이래저래 말을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냥 돌아왔다.
리조트에 와서는 슬리퍼를 깨끗이 닦아서 말려 놓고 신발을 꺼내 신었다. 이제 더 이상 물과 가까이하면 이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전날 손이 약간 상해서 밴드를 붙이고 다이빙을 했는데, 그 밴드에 묻은 바다 향을 맡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저녁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해변에 나갔다. 이제 이곳을 정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급습했다.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변기 물 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바닷속에서 들었던 호흡기 소리가 연상되었다.
한 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 첫날처럼 민속촌행 버스를 탔다. 용인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시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또 비행기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아주 여유롭게 예매를 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지 않고 중간에 내려 버스를 탔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고 나서야 주변 기온이 느껴졌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한국은 유독 추웠다.
@지출내역
6박 7일간 총 1,725,672.35k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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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usd 환전 – 1135576krw
-집에 있던 40usd – 56778krw
-6000php 환전 – 154020k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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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집-용인터미널) – 5500krw
택시(용인터미널 – 민속촌) – 13100krw
공항버스(민속촌 – 인천공항) – 11000krw
비행기(인천-팡글라오) – 278800krw
샵에 지불한 비용 – 840usd + 750php
-세부내역
–오픈워터 + 어드벤스드 교육비와 숙박, 아침, 점심(4박 5일) – 700usd
–펀 다이빙 3번과 숙박, 아침, 점심(1박 2일) – 120usd
–공항 픽업 – 500php
–장비 렌탈(1일) – 15usd
–다이빙 컴퓨터 렌탈(1일) – 5usd
–발리카삭 입장료 – 250php
아이시스(타이 음식점, 콜라, 쌀국수) – 330php
맥도날드(쿼터파운드 치즈 버거 세트) – 328php
빠우(중국음식점, 짬뽕파스타와 볶음밥, 튀김, 맥주, 망고쉐이크, 일행과 나눠 냄) – 720php
졸리비(챔프버거 세트) – 270php
버즈 카페(아이스크림) – 80php
피라미드(피자와 셀러드, 튀김, 맥주, 일행과 나눠 냄) – 1000php
졸리비(치킨과 밥, 스파게티) – 170php
세븐일레븐(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먹을 여러 과자와 빵) – 97php
헤난 리조트 – 89824krw
공항 드랍 – 500php
보홀 공항세 – 560php
공항버스(인천공항 – 신갈) – 10300krw
시내 버스(신갈 – 용인시청) – 1450kr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