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교 중앙 도서관에는 한 산악인의 부조가 있다. 오늘 그 앞을 지나갔는데 조화가 놓여있었다.
높 오르는 것처럼 극한의 상황에 도전하는 것이 도박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곤 했다. 심지어 생명이 돈보다 소중하니 극한의 상황에 도전하는 것이 도박보다 더 짜릿할 거라고 여기기도 했다.
입 밖으로 꺼내기는 불경한 일이니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게오르그 짐멜이라는 사회학자의 글을 모아놓은 책인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라는 책의 <알프스 여행>이란 장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와서 소개해 본다. 아래는 이 책의 137쪽에 있는 내용이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목숨을 내거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더구나 50프랑이나 100프랑을 벌기 위해서 등산가의 미숙함이나 재난에 목숨을 거어야 하는 안내인들을 고용하는 것은 더욱더 비윤리적이다. 만일 누군가 알피니스트와 도박꾼을 비교하자고자 한다면, 그는 아마도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순전히 주관적인 자극과 만족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건 도박을 한다. 왜냐하면 도박꾼 역시 수 많은 경우 물질적 이득이 아니라 오로지 위험 부담이 주는 삶의 긴장감을 추구하며, 또한 냉정과 열정의 박진감 넘치는 결합과 더불어 자기 자신의 역량과 예측할 수 없는 숙명이 선사하는 행운의 결합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알피니스트가 하는 도박은 원래는 이기적이고 직접적인 환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윤리적으로 오로지 가장 높은 객관적인 가치를 위해서만 감행되어야 하는 그러한 도박이다. 오직 낭만적 매력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이 점을 잘못 알고 있다. 사회적 또는 종교적 의무가 생명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행될 수 있었던 시기에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거는 모든 행위에는 낭만적 매력이 부여되었는데, 당신에는 이런 희생이 –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서 목숨을 희생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 윤리적 존엄성이라는 불명의 광휘를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