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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모스크바

열차에서 내려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 가는데 기름지게 생긴 경찰이 나를 잡으며 “빠스뽀르뜨”라고 말했다. 러시아어 수업시간에 들었던 기억인 것 같은데, 러시아에서 경찰이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면 꼭 두 손으로 여권을 잡고 보여주라고 했다. 아니면 여권을 채가서 귀찮게 군다고. 그래서 그렇게 보여주고 다시 길을 나섰다. 종착 역에서 지하철로 가는 지하보도는 좁진 않았지만 낮았다. 조금더 걸어가니 개찰구가 있었다. 표 사는 곳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표 파는 사람도 그에 맞게 많았다. 기계는 잘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의 버스카드 이름은 “뜨로이카”다. 뜻은 삼두마차. 우리나라로 치면 “티머니”가 “마차”인 꼴이지 않을까? 내가 가본 지하철역에는 금속탐지기와 가방 안을 살필 수 있는 엑스레이 투시기기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도 생각해보니, 공항이나 역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라면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투시기를 통과해야 했다. 아마 테러에 대한 반응일 거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계단을 올라갔는데 거대한 규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현대미술을 본 것 같았다. 높은 돔 형태의 흰 천장과 장식들, 거대한 조명은 지금까지 삼등 열차에서 느꼈던 러시아의 느낌이 아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나무를 얇게 저며 발라놓았다. (에스컬레이터 끝에는 안전 관리인이 앉아 있을 작은 공간이 있다.) 승강장도 잘 꾸며져 있었다. 여러 장식이 있는 승강장은 크고 넓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공중에 전선이 있는 전철이 아니어서 터널이 작은 것이 역을 더 높게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러시아의 지하철은 정말 크고 아름답다. 단지 열차가 시끄럽고 천장에 구멍이 여러 개 있어서 터널의 공기와 소음이 그대로 들어온다는 것과 열차 안에서 지금 정차한 역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좋지 않다.
아직 체크인 시간도 되지 않고 해서 지하철을 타고 붉은 광장에 갔다. 광장 중앙에는 임시로 만든 회전목마 같은 것들이 있어서 아직 연말 느낌이 났다. 광장에 들어서면 맞은 편으로 성 바실리 성당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굼 백화점, 오른쪽으로는 레닌의 묘와 크렘린이 보인다. 광장 중앙으로 가는 길에 국립 역사 박물관을 지난다.
다른 것들은 내일 들려보기로 하고 오늘은 짤막하게 성 바실리 성당만 둘러보기고 여독을 풀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본전 생각에 꼼꼼하게 둘러보느라 시간을 꽤 보냈고 그때도 욕심을 못 버리고 시내를 좀 걸어봤다. 욕심을 버렸어야 다음 다음날 허리가 안 아팠을 텐데……. 그러니 지금이라도 더 쓰고 싶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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