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 백화점을 나와 붉은 광장을 조금 더 서성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온 모스크바와 이제 작별해야 한다. 뭐 별개 있는 건 아니다. 춥고 시끄럽고 그렇지 뭐. 붉은 광장에서 벗어나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에도 사람이 참 많았다. 그래도 이 동네는 지하철 통로가 모두 일방통행이어서 발만 맞춰 걸으면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히거나 할 일은 없다.
브누코보 공항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못지않게 추웠다. 출발 층에는 의자 하나 없었다. 음식점이 있는 출발 층 위층에 가면 의자가 조금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보다 공간인심이 야박한데 카페나 음식점의 공간인심은 똑같다. 돈 없으면 서러운 거지 뭐. 화장실도 어디 구석에 하나씩 있다. 밖에 나가면 느끼지만 우리나라는 정말 화장실 인심이 좋은 나라다.
공항에는 꽃 자판기도 있다. 참 이 나라는 꽃 보기가 쉽다. 블라디보스토크도 그렇고 모스크바도 그렇고 동상이 하나 있으면 꼭 아래 꽃이 몇 개 놓여있다. 크렘린 성체에 있는 묘비도 마찬가지다. 스탈린 묘비 앞에도 꽃이 놓여있다!
수속을 끝내고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눈이 왔다. 러시아에 있는 동안 내리는 눈은 참 조금 밖에 못 봤다. 밖에 나다닐 때 눈이 내리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인 일이긴 하다. 해어지는 마당이니 뭐든 생각나고 아쉽기 마련이다. 눈발을 해치며 걷지 못한 게 생각났는데 이별하는 중에 눈이 내려 아쉬움을 덜었다.
대륙 안에서 이동할 때 유일하게 저가항공을 타지 않은 여정이다. 항공기 안에서 먹은 기내식이 여정 중에 처음으로 먹은 따듯한 음식이었다. 정말 살다가 기내식에 그렇게 만족하기는 처음이다. 타봐야 몇 시간이니 아무 비행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항공권도 저가 항공과 얼마 차이 나지 않아 선택한 거다. 그런데 처음으로 돈 더 준 게 아깝지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착륙할 때가 다 되었다고 창을 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동이 텄는데 창 너머로는 파란색부터 빨간색 사이의 모든 색이 나타나 있었다. 기내 시계는 터키 현지시간이 1시간 느리게 표시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기 일광절약시간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였다. 시계를 살펴본 것은 제대로 도착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환승 시간이 1시간 이기 때문이다. 뭐 비행기 놓치는 경험도 재미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내심 설마 환승 못 한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좀 늦으면 항공사에서 마중이라도 나와줄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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