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모스크바 마지막 밤

모스크바 크렘린은 경복궁 같은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기능한다. 안에는 대통령 관저가 있다. 그래서 다닐 수 있는 동선이 제한되어 있고 길을 잘 못 들었다 싶으면 경비가 와서 더 이상 진입하지 말라고 막아선다. 무기고 전시 구역과 크렘린 안의 성당 구역을 둘러보면 남은 것은 몇몇 조형물과 전시들이다. 눈에 익지 않은 가구나 그릇들을 볼 수 있다. 또 전시실의 위치가 성당 지하나 크렘린 내부 건물을 일부 층인데 전시를 위한 가구 뒤로 원래 있던 낡은 공간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크렘린을 나와서 다시 붉은 광장으로 가서 국립 역사 박물관에 들렸다. 늦게까지 문을 여는 날이어서 오후에 입장했지만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크렘린 내부 전시도 그렇지만 박물관 안도 참 뭐가 많다. 아쉬운 점은 크렘린 안 성당은 북쪽의 느낌이 나는 글자체로 만들어진 설명서가 있었는데 이 박물관 안에서는 영어 설명도 찾기 어려웠다.
영국 박물관이나 루부르 박물관에는 눈에 익은 전시물도 많았고 교과서에서 나오는 좋은 그림과 조각도 많았다. 그러니까 귀중하고 비싸다고 이야기되는 것이 많았다. 러시아에서 영국 박물관이나 루부르 박물관에 비교되는 것은 에르미타지 미술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 박물관에 눈에 익은 전시물이 없는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전시물은 엄청 많은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러시아를 지금껏 익숙한 서양의 관점으로 바라봐서다. 더 자세히는 푸른 눈에 하얀 피부 하면 으레 것 미국이 생각나는데 러시아를 보면서 미국의 기대를 품은 거다. 뭔가 실용적일 것 같고 불필요한 예절은 삼갈 거 같은 기대가 있는데 러시아는 다른 나라다. 사람이 손수 외투와 가방을 받아서 보관해주기도 하고 소화기를 눈에 거슬리지 않게 나무함에 넣어 놓는 나라다. 하긴 건물 외부나 내부의 색부터 미묘하게 어색한 느낌이 난다. 옥색 건물을 본 적은 잘 없잖나?
역사 박물관을 나와서 붉은 광장으로 들어가 굼이라고 불리는 백화점에 들렀다. 나같은 가난뱅이 여행자가 살 물건이라고는 매대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정도가 있다. 천장은 유리로 되어서 밖이 보이고 빈 공간을 중앙에 두고 복도가 둘러있고 그사이는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레닌의 묘도 그렇지만 사치품을 파는 백화점이 옛 소련의 중심부에 있는 걸 보니 역시 돈은 매력적인 거다.
공항까지는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갔다. 공항 철도도 있지만 공항에 빨리 가서 할 것도 없고 가격도 훨씬 싸기 때문이다. 낮에 너무 돌아다녀서인지 허리가 아픈 것을 투덜거리면서 또 모스크바의 추위와 교통 체증을 경험하면서 공항으로 갔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