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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모스크바 #3

모스크바에서는 분명 오랜 기차 여행의 여독을 풀려고 했는데 도착한 저녁에 크렘린 입장권을 예약하고 있었다. 크렘린 입장권은 종류가 많았는데 일단 그냥 크렘린 안의 전시와 성당을 볼 수 있는 권종이 있다. 크렘린 안의 무기고를 개조해 보물을 전시해 놓은 장소가 있는데 여기에 들어갈 수 있는 권종이 별도로 있고 이 공간 안에 보석을 모아놓은 제한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권종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당 중 한 종루에 올라가 볼 수 있는 권종이 있다. 올라가 볼 수 있는 종루는 수리 중이었고 보석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에 무기고와 크렘린 내부만 들어가는 권종을 예약했다.
무기고는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오전에 시간이 남아서 짐을 맞기고 레닌의 묘에 들렀다. 레닌의 묘는 붉은 광장에서 보면 크렘린 앞에 있는데 돌로 마감한 건물에 쌈빡하게 레닌이라고만 쓰여 있다. 간단한 검문을 받으면 들어갈 수 있다. 레닌의 묘 근처에 가면 늘 시끄럽게만 보이던 중국인들의 조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레닌의 묘니 안에는 방부 처리된 레닌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 앞에 있는 레닌의 동상과는 다르게 참 작다. 아마 휘날리는 코트를 입지 않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레닌의 시체가 관광 상품이 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같은 인간으로서 입에 쓴맛이 돈다. 관광 상품이 아니라 처도 레닌을 보러 오는 이유는 인간 레닌보다는 공산주의나 혁명, 소련 뭐 그런 단어로 대표할 수 있는 생각들의 아이콘으로써 레닌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레닌의 묘를 나오면 크렘린 성벽을 따라 다시 붉은 광장으로 나오게 된다. 성벽 앞에는 스탈린같이 이름 알 법한 사람들의 묘가 있다. 꽃이 빠지지 않고 놓여있기도 하다. 뭐 우리나라도 그러하니 스탈린 앞에 꽃이 놓여있는 것에 별 할 말은 없다. 크렘린 성벽은 멀리서 보면 적벽돌을 쌓고 흰색 매지를 넣은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그린 거다. 적색으로 벽을 칠하고 흰 줄을 그렸다. 이게 처음에는 그렇게 황당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아 그래도 백악관에 대비되는 장소이기도 한데 정말로 벽돌을 붙이기라도 하지 없어 보이게 벽돌 모양을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바실리 성당 내부도 그렇다. 그리지 말고 모자이크로 하면 안 되냐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 거리에서 보이는 건물 외관도 색칠하지 말고 돌을 붙이면 안 되냐고 생각했다. 그려 놓은 것은 아주 얇은 면에 불과하고 금세 더러워지고 누가 긁기라도 하면 사라져버리는 것이니 좀 싸보였다. 벽난로를 놓기는 힘드니 모니터에 벽난로 영상을 켜놓은 느낌?
바실리 성당 내부나 크렘림의 성벽과 모스크바 건물 외관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모스크바에서 그치지 않고 이 여행 내내 가지고 있던 화두였다. 앞으로 더 쓰며 풀어볼 주제다. 일단 나는 레닌의 묘를 나와서 크렘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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