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한 검문을 받고 크렘린 안으로 들어가서 무기고 전시실로 가면 외투와 가방을 맡겨야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도 그랬지만 이 동네는 외투를 참 잘 받아줘요. 추운 동네다 보니 두꺼운 외투를 입을 날이 많은데 이런 옷을 입고 실내에 있기는 영 불편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고 외투를 홀랑 다 맡기면 안 돼요. 우리나라처럼 난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방열판 몇 개 있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은 바람만 막아주고 안에 사람들의 열기만 모아주는 정도이지요.
무기고 전시실로 들어가려면 신발 싸개를 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이상한 곳에서 유난스러워요. 모스크바에서 저는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밖의 건물 아랫부분은 눈 녹은 흙탕물로 얼룩덜룩 한데도 오염에 강한 소재를 쓰지 않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 더러운 게 조금 묻는다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같아요. 그런데 밟으라고 있는 바닥에 유난히 신경 씁니다. 물론 건물 안에 카펫도 깔려 있고 해서 신경 써야 하는 건 맞겠지만 그래도 이상합니다. 다른 사건도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이 건물도 그렇고 역사 박물관 건물도 그렇고 안에서 소화기 찾는 게 정말 힘듭니다. 보통 소화기는 밖에 놓고 빨간 화살표로 표시해서 알아차리기 쉽게 하지요. 그런데 여기는 소화기를 건물 인테리어에 맞췄습니다. 실내 디자인과 어긋나지 않는 나무 장에 손바닥보다 작은 소화기 스티커를 붙여 놓고 그 안에 소화기를 넣었어요. 다시 말하면 모스크바는 저와 다른 관점으로 아름다움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무기고 안에 꾸려 놓은 전시실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실내는 높고 넓어서 답답하지 않고 그에 맞게 잘 만들어진 것들을 엄청나게 채워놨습니다. 전시물에 달린 설명을 보면 어느 나라 대사가 러시아에 줬다는 말이 많습니다. 러시아 역사 박물관에는 노태우가 준 자개함이란 설명이 있는 걸 보면 굳이 옛날일 뿐 아니라 요즘 받은 선물도 전시합니다. 그리고 전시물 중에 천으로 만들어진 의복이나 커튼, 깃발 같은 것이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색은 좀 바랬지만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아름답게 여겼는지 상상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잘 만들어진 마차들도 기억에 남아요. 크기도 클뿐 아니라 세부 장식이나 창으로 쓰인 유리의 질이 좋았습니다. 실제로 굴러다니던 시대에 길에서 마주쳤다면 지금 비싼 외제 차 뒤를 피하듯이 멀리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