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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묘한 빗나감 – 모스크바: 프레스코화

[그림 60] 크렘린 안의 성당 – 외벽의 칠과 벽화가 보입니다.
무기고를 나와 크렘린 안에 있는 성당을 둘러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닿고 싶어서인지 성당은 대개 높아요. 그래서 저는 성당을 볼 때면 높게 지은 것과 관련된 성당 구조에 눈이 갑니다. 기둥이나 보의 형태나 천장 혹은 아치 같은 것들 말이지요. 구조는 언제나 처음 만들 때 그대로입니다. 만약 비틀어지거나 어디 하나가 빠지면 성당은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구조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 빠지면 성당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성당 안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는 성당의 구조 못지않게 오래갑니다. 유리나 돌 같은 모자이크 재료는 겉과 속이 같아요. 잘 마감된 검은색 돌의 표면에 상처가 나면 처음과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검은색이지요. 그러니 모자이크는 바닥에 깔아 놓기도 해요. 그런데 그림의 칠은 두께가 거의 없습니다. 상처라도 난다 치면 사라져 버리지요. 여태껏 제가 성당에서 본 벽화는 대부분 색이 변하거나 일부가 떨어져 나가거나 심지어 고의로 덧칠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가면 벽화는 눈에 잘 안 들어왔어요.

건물 외벽도 그렇고 러시아에 있을 때는 유독 칠한 것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렘린 안의 성당들을 둘러볼 때는 뭔가 칠해 놓은 면들을 예전과 다르게 유심히 보았지요. 성당 내부는 규모가 큰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고 비가 들이치지 않는 외벽이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기도 합니다. 물론 크렘린 안의 벽화가 남다른 건 아니고 제가 여태껏 보았던 벽화와 비슷하게 시간의 흔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벽화를 살핀 걸 보면 여행을 하며 칠한 걸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겁니다.

프레스코화는 큰 규모를 이루기에 좋습니다. 모자이크는 프레스코화처럼 세부 묘사나 다양한 색을 보여주긴 어려워요. 이 큰 성당 안을 아주 작고 많은 종류의 돌로 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규모가 있는 건 눈에 잘 보이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쉽습니다. 그림의 붓 터치니 색감이니 구도니 하는 것들은 어려운 이야기지만 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물론 규모가 있어서 눈에 띄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긴 합니다. 사람들의 입방에 올라 금세 철거되어버리는 큰 조형물도 있어요. 그러나 너무 규모가 있으면 쉽게 철거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기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렸습니다. 아주 세세하고 잘 만들어진 손바닥만 한 모자이크는 어디 부잣집 방구석에 귀중히 보관되다 사라져버릴 수 있지만 규모가 있으면 쉽게 잊히기 어려워요.

어차피 모든 건 끝이 있고 모자이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만들어 놓고 영원하길 바라는 건 아이가 사탕을 영원히 빨아먹고 싶어 하는 꼴과 꼭 같습니다. 모자이크든 프레스코화든 시간이 흐르면 흐려지고 불행한 사고로 소실되기도 해요. 심지어 이상한 방향으로 복원되기도 합니다. 이런 그림이 처음 그대로 유지된다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에 따른 마멸을 못 견뎌 하는 건 꼭 죽어야 하는 제 분수도 모르는 행태이지요. 그리고 그림이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저는 순수하게 그 대상만을 이해할 수 없어요. 저는 지난 시간 동안 쌓인 비평이나 현재 영향력 있는 주장을 안경으로 끼고 벽화를 바라봅니다. 이런 안경 없이 그 작품과 제가 독대한다 쳐도 저는 이미 그 시대 사람이 아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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