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박물관에는 중동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미라가 담긴 관이나 이집트 상형 문자가 쓰인 비석같은 거다. 이건 순전히 내 상상인데 박물관과 놀이동산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터넷도 없고 통신의 폭과 속도가 느렸던 시대를 놓고 보면 박물관은 정말 깜짝 놀랄만한 물건들로 가득 찬 신비한 곳이다. 지금도 판타지 영화에서 신비한 소재로 등장하는 미라 같은 건 차차 하고 이야기로만 듣던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유물은 시각적 자극 거리다.
좀 더 나가보면 인터넷에서 하릴없이 재미있는 사진을 본다거나 하는 일과 박물관 둘러보는 일도 시간을 때우고 자극을 찾는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바 없다. 박물관의 일반 관람 동선에서 벗어나 보면 여러 학술적인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곳은 한 번 훙 둘러 보는 사람에게는 별로 유의미한 공간이 아니다. 그냥 관람해도 얻는 게 있기야 하다만 그렇게 얻는 거나 심심해서 열어본 웹 페이지에서 생각지도 모르게 뭔가 배운 거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슐리히만 이야기)
그런데 나는 박물관이 좀 더 고상하게 느껴진다. 포털에서 본 사진이나 글은 시시하고 박물관 돌아다니는 건 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폴리 박물관에 간 거다. 있어 보이니까. 뭘 본격적으로 배우겠다고 갔으면 공부를 충분히 하고 갔겠지. 그래도 애매하고 모호하니 있어 보이는 게 뭔지 더 따져 봐야 한다.
호텔 방에 처박혀서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간 때우는 것보다야 그래도 머리는 감고 박물관에 간 것이 더 있어 보이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고급 자동차나 정장 광고를 보며 느끼는 순전히 외적인 있어 보임은 아니다. 그러니까 뭐 대단히 배운 사람이 된 느낌을 받을려고 간 건 아니란 거다.
모르는 도시에 갔을 때 본전 생각에 뭔가 해볼 거리 목록을 만들면 박물관 가가기가 상위에 있다. 나에게 박물관 가기는 눈에 익고 귀에 익은 행동이다. 낯선 동네에 가서 여유가 있다면 작은 길이라도 어느정도 걸어보는 편이다. 어떤 건물이 있는지 간판은 어떻게 놓여있는지 사람이 몰리는 곳은 어딘지 뭐 이런 것들을 보면 이 공간에 묻은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은 살펴볼 수 있다. 부동산에서 동네를 물어볼 수도 있고 술집에서 살부딫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마주하고 싶은 세상은 그렇게 개인적이고 깊은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홀히 한다는 말은 아니다. 바둑 기보 하나하나가 사람을 이긴 알파고를 학습하는데 필요하다. 그렇다고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게 한 결정적인 기보가 뭐라고 짚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한 동네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그냥 직접 그 동네 사람을 마주하는 거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뭔가 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다. 동네 사람을 직접 마주하는 것, 그러니까 그 동네의 세부사항을 보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지만 몇몇 세부사항만 아는 건 되려 잘못된 인식에 이르게 한다. 여행 가서 택시비가 우리나라보다 비싸다고 택시 기사에게 덤터기 씌었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 사람이 모두 사기꾼이라고 믿는 건 용감하게 무식한 거다. 적어도 그 나라 택시비는 찾아보는 노력은 필요하다.
박물관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걸 정제해 놓았다. 더 친절한 설명이 있고 관람 동선이 있고 중요한 건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리에서라면 고만고만해서 알 수 없을 차이도 잘 만들어진 것이 정제되어 놓여있기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 국가의 대표 공항은 그 나라의 현대 박물관이라 해도 된다. 보통 공항은 이름부터 그네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오기도 하고 최선 건축 공법을 사용한다. 건물의 운영도 가능한 잘 갖추려 한다. 예컨대 공항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면 그 나라의 외국인을 위한 배려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공항의 안내 표지는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보여주는 거니 불친절한 택시 기사 한 명을 만난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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