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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대학원생의 수기

부르는 행위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다. 공부하면서 읽는 글들은 어떤 생각을 말할 때 그 생각을 말한 사람을 정확히 불러준다. 2018년에 김유민은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좋다고 말했다고 하는 식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어떤 사람이 쓴 글을 통째로 다시 적기도 한다.

이것은 일상과 무척이나 다른 일이다. 만약 내가 어떤 블로그의 글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면불펌이라고 말하면서 비난받을 것이다. 일부 블로그는 글을 복사하지 못하게 막아 놓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복사를 막고(사실 막을 수도 없다) 글을 인용하는 것을 비난하는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그 글들이 인터넷에 게시된 글들일 때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너무 불리지 않아서 잊히고 있다면, 그 사람의 생각과 함께 이름을 불러주는 행동은 그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일과 비슷하다. 죽었다는 것은 현실에서 없어졌다는 말인데 없어졌다는 말과 잊혔다는 말은 결과만 놓고 보면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잊혔다면 쓸 수가 없다. 마치 원래 없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이미 많이 불린 사람을 다시 부르는 것이 무의미한 일도 아니다. 무엇인가 외우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되뇌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많이 불린다면 더 오래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 내 글을 내 이름과 같이 인용했다면 무척이나 고마울 것이다. 내 생기를 채워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나 어느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인터넷에 글을 올려놓고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인용하길 원하지 않는 심보는, 절대 반지를 혼자 독차지하려는 골룸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이렇게 좋은 글을 가지고 있으니 너도 여기 와서 봐봐, 그런데 이 글은 나만 가지고 있어야 해이런 심보인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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