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전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시골이니까 우리 동네라고 하는 거다. 차로 20분 걸리는 장소를 서울에서는 우리 동네라고 하진 않는다. 여튼 일제 때 수원에서 여주까지 이어지는 협궤가 있었지만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얼마 있지 않아 없어졌다. 그리고 작년부터 표준궤 전철이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 인천으로 간다는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한 무리의 중년들이 있었다. 결국 길을 물어본 사람은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갔는데 이유는 전철은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잘 맞추고 어디든 같은 디자인을 지닌 안내 표지와 심지어 3개 언어로 방송까지 하는 수도권 전철이 타기 불편하다는 소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간혹 정류장도 지나치고 안내 방송도 쌈싸먹는 버스와 전철은 초행길에서 헤맬 확률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블라디보스톡 버스는 우리나라 버스 보다 더 혼탁하다. 서울 버스가 서울 번호판을 달고 운행하기도 하고 그레스나 봉고 같은 승합차가 버스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항 버스 정류장에 서는 버스도 21인승 리무진 이런 것이 아니라 승합차이고 짐을 실으면 돈을 더 내는 구조다. 환율이 반 토막이 난 러시아에서 버스보다 비싼 공항 철도를 타는 것이 무슨 큰 사치로 보이지는 않았다.
러시아 열차는 우리나라가 쓰는 표준궤 보다 약간 넓은 광궤다. 그래서인지 객차 내부가 좀 넓다고 느꼈다. 객실에 앉은 뒤에 한 무리가 옆에 앉았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것마냥 자리를 훌 떴다. 그리고 나는 역까지 주욱 혼자 앉아갔다. 내가 눈 색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외국에 온 것이다
반나절 돌아본 블라디보스톡에서 뭔 할 말이 있겠냐만, 언 바다에 차를 세워놓고 낚시하던 많은 사람들과 우측통행인데 우핸들인 자동차들 그리고 기골이 장대한 동상들이 많다는 것과 그 앞에는 꼭 꽃이 놓여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 열차는 모스크바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12시에 출발하는 기차라면 7시간 시차를 더해서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9시에 출발하는 꼴이다. 숙소에 누워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예컨대 모스크바 시간으로 저녁 6시에 출발하는 기차라면 7시간을 더해서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다음날 새벽 1시가 출발시간인데 나는 12진법이 아니라 10진법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그러니까 블라디보스톡 시간으로 3시에 출발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1시에 출발하는 열차였다. 급히 숙소를 나왔다.
나는 정말 끝인 역이 익숙하지 않다. 전철의 종점 뿐 아니라 서울역이나 용산역, 청량리역은 선로가 끝나지 않는다. 끝이란 의미를 지닌 터미널을 생각하면 도로 끝이 보이는 버스 터미널이 생각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종착역은 모두 터미널 형태다(두 역은 디자인도 같다). 선로의 끝에서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끝을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하자.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지구 둘레의 사 분의 일이다. 지구 규모를 체험할 수 있는 열차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