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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수능날이 되어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성적이 높은 학생을 모아 만든 우(優, superior)반이 있었다. 문과에서 성적 상위 30명 정도로 한 반을 만들고 이과에서도 그렇게 해서 총 2반이 있었다. 나머지 반은 어떻게 편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劣,inferior )반이라고 했다. 내가 속한 열반 아이들의 모의고사 성적이 제각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열반은 성적을 기준으로 나눈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교 측이라고 학교 명성과 직결되는 좋은 입시 결과를 내지 못하는 떨거지들이라고 열반으로 치워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열반이라고 늘 시궁창은 아니었는데 열심히 성적을 올리면 다음 학년에는 우반에 들 수 있기도 했고 열반 아이들 중 몇몇을 뽑아서 우반과 같은 자습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또 인문계 고등학교 인지라 아이들은 나름 입시에 대한 고민도 있고 모두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수능 날이 되니 고등학교 때가 무럭무럭 생각나는데, 우리가 노무현의 대입 정책을 무척이나 싫어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다. 당시 정권은 수능 위주의 입시를 다변화함과 동시에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우대 정책을 폈다. 정권의 속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표면적으로는 학벌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다닌 학교는 그래도 지하철 두 개가 교차하는 곳이었는데, 어디 시골 산다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거나 특별 전형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배알 꼴리는 일이었기도 하고 수시니 논술이니 하지 않고 수능 당일 모든 것이 결판 나는 일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교육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 학생이 우대받는 것과 수능이 아닌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싫었던 이유는, 적어도 나는 수능으로 개과천선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늘 좋은 대학만으로 인생이 펴진다고 말했기 때문에, 남들은 어찌 되었든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삶을 살면 되는 것이고, 내게 좋은 삶을 보장하는 이 교육 제도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다른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수능이 신이 만든 시험이 아닌데 맹목적으로 입시에 매달리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태어날 사회를 고른다면, 수능에 실패해도 패배자라고 손가락질 받거나 혹은 스스로 주눅 들지 않는 사회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찾아간다고 체제에 순응하지 말라고 하진 못하고 더 열심히 수능 준비하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당시 변화에 대한 시도를 불평하진 말라고 당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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