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지만 우리 철학과에는 두 가지 불문율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철학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는 겁니다. 두 번째는 철학과 졸업하면 뭐할 거냐고 묻지 않는 것이죠. 철학이 실리를 만드는 학문은 아니니 철학을 배워서 앞으로 뭘 할 거냐는 두 번째 질문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와 다르게 첫 번째 질문은 무척이나 철학적입니다. 어떤 개념의 의미를 의심하거나 더 정확히 정의하려는 시도는 많은 철학자가 해왔던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렇지요. 저는 철학이 무엇인지 묻기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설명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물리학과는 물리를 배운다고 하거나 컴퓨터공학과는 컴퓨터를 배운다고 입을 때볼 순 있을 것 같은데 철학과는 철을 배운다고 말할 수도 없지요.
자신이 공부하는 것이 뭔지 남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만큼 아쉬운 일도 없을 겁니다. 굳이 철학을 설명하는 상황이 아니라도 아는 것인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남을 이해시키지 못하거나 심지어 오해를 만드는 일은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설명에 실패하는 상황을 피하는데 <<설득을 이기는 설명의 힘>>이 제시하는 좋은 설명을 위한 도구와 방법을 파악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겁니다. 특히 제가 집중적으로 읽은 장인 <단순화>와 <제약>은 복잡한 내용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읽은 부분은 복잡한 내용을 어떻게 잘 설명할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제시하는 방법은 꽤 유용합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해한 것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단순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지식의 저주”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저자인 레피버는 “지식의 저주”를 설명이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습니다.(59쪽 이 쪽수를 포함해 앞으로 나오는 쪽수는 다음 책에서 인용 면수를 가리킵니다. 레피버, 리 (2013), 정석교 역, <<설득을 이기는 설명의 힘>> 미디어윌.) “지식의 저주”는 설명해야 할 내용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정작 설명을 들어야 할 사람의 수준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일반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 용어와 함께 전공 서적에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전문가를 “지식의 저주”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단순화”는 지식의 저주를 피하면서 효율적인 설명을 하려는 방법입니다. 복잡한 내용은 중심 주제에 관한 여러 내용이 곁가지처럼 여기저기로 뻗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단순화”하는 것은 효율적인 설명을 위해서 이런 곁가지들을 쳐내고 중심 의미에 해당하는 굵은 가지만을 남기는 겁니다. 그리고 곁가지들을 얼마나 쳐낼지는 설명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달렸습니다. 만약 설명할 주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해를 위해 많은 세부 내용이 희생될 겁니다. 그러나 설명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 정확하고 세부적인 내용이 포함된 설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친절하게 레피버는 “단순화”를 위해 따라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합니다.(174-175쪽) 첫 번째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설명할 주제에 대한 이해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파악한 수준에 맞춰 적당한 단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설명할 주제와 관련된 주위 맥락을 살펴보라는 겁니다. 네 번째는 세부 사항과 예외에 집착하기보다는 핵심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라는 겁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소극적인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부정확해도 이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듣는 이에게 친숙한 개념이 설명 내용에 관련되어야 합니다.
“단순화”가 필요한 것만 알아듣기 쉽게 딱 담은 설명을 만드는 방법이라면 “제약”은 듣는 이에게 전달할 설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방법입니다.
레피버는 “제약”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합니다.(178쪽) 청자에게 적합한 설명을 할 때는 여러 선택이 따릅니다. 설명에 사용할 매체만 생각해도 많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말로 할 수도 있지만 글로 전달할 수도 있고 영상을 사용할 수도 있는 일이지요. 이럴 땐 멍하니 뭘 선택할지 둘러보는 것보다 현실적인 제한을 확인하고 이에 맞지 않는 선택지를 제거하는 것이 현명할 겁니다. 프로젝터나 모니터가 없는 공간에서 설명해야 하는데 영상 매체를 고려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지요.
앞서 말했듯이 설명을 준비해야 한다면 일단 제한 조건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이런 “제약”을 통해 여러 아이디어 속에 표류하던 작업이 방향을 잡고 좋은 설명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5분짜리 설명을 준비하는데 청자의 언어에 대한 제한이 없다면 한 설명을 수많은 언어로 반복해야 하는 우스운 상황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몇몇 청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한국어 청자라는 제한 조건이 있어야 5분짜리 설명이 만들어질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설명을 구상하는 방법과 현실적인 여러 조건을 이용해 설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했습니다. 두 내용을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효과적인 설명을 하고 싶다면,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제한을 고려하는 것은 좋은 설명을 만드는 데 유용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제 철학이 뭐냐는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짓기보다는 질문의 상황과 상대를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설명하면 될 겁니다. 도덕 교과를 배운 중학생 사촌 동생이 호기심에 가득 차 철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묻는다면 사촌이 배웠을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사람들을 배운다고 하면 될 것이고 교양 수업에서 만난 다른 과 학생이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가볍게 물어본 것이라면 교과서에 나오는 철학(philosophy)의 정의 그대로 지혜(philia)에 대한 사랑(sophia)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진지하게 이 질문에 답해야 할 때는 긴 글로 설명해야 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