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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슈퍼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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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해서 졸업 전까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신라호텔에서 투숙하고 조식 먹고 중간이나 기말고사를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끝내 하지 못했다. 날이 좋으니 신라호텔 오른편으로 잠실에 롯데가 새로 지은 건물이 보인다. 듣기로는 123타워라고도 하고 슈퍼타워라고도 하는데 뭐 나한테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저 높은 건물은 볼 때는, 정경유착이나 환경이나 이런 것을 떠나서, 저 건물 주인이 몹시 짓고 싶어했을 거라는 소설을 쓴다. 아 물론 돈이 되니까 짓고 싶었겠지, 그런 것 말고, 감정적인 이유로 말이다. 이렇게 감정적으로만 돈을 쓰는 것을 돈지랄이라고 하는데, 예컨대 촌동네로 가면 크고 좋은 비석을 세워서 가문의 위세를 자랑하는 것 같은 일을 생각해보면 되겠다. 표면적으로는 돈지랄이겠으나 이면에는 치밀한 경제논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놓아두고.

그러니까 슈퍼타워가 엄청 큰 묘비같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일단 돌도 아니고 멋진 말도 안 쓰여 있지만, 딱 보면 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니까. 그리고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든다. 지어놓고 보면 사실상 건물주는 좀 뿌듯할 것 같다. 노인들이 자기 명당에 묫자리 봐두는 것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너무 속물적으로 보이는데, 이와 비슷한 부러움을 느낀 것은, 이태원에서 삼성과 관련 있는 미술관인 리움의 부속건물 하나와 강남 교보타워를 보았을 때이다. 두 건물 모두 적색 벽돌로 마감한 것인데, 한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다. 강남과 강북에 비싼 땅에 규모 있는 건물을 똭똭 박아 놓았으니, 건축가는 좀 뿌듯할 것 같다. 그래서 부럽다.

슈퍼타워도 그렇고 강남과 강북에 놓인 건물도 그렇고 규모가 있다. 사실 대단한 것은 규모가 있다. 서양이 동경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도 규모가 있다. 규모라는 것이 꼭 물리적 크기로만 받아들일 것도 아닌 것이, 반도체같이 미세한 것 뒤에 놓인 것은 거대한 공장이니, 많은 손이 들어가는 것이 규모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봄직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밀한 작품 같은 것들도 규모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서양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고대 그리스가, 생각과 저술들은 그대로 있고, 거대한 돌무더기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엄청 떨어진 한국에서 내가 그 사람들의 책을 읽었을지 의심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그리스의 영향력과 그리스의 문화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람이 하는 짓이 비슷한 것도 있는데 잘 나가는 사람이 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유의미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뭐 여튼, 쌈마이스럽지만, 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규모가 없으면 내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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