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오름

모스크바행 열차를 예매할 때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역에서 체크인하고 열차표를 받는 방법과 열차표를 인쇄해서 제시하는 방법이다. 나는 열차표를 인쇄해갔는데 내가 탈 칸 차장이 날 들여보내 주지 않고 러시아어로 주저리주저리 말한다. 러시아어를 못한다고 하니 러시아어로 더 뭐라고 하는데 대충 눈치로 너는 외국이니까 내가 해준다는 말 같다. 내가 자리를 잡으니 다른 직원이 와서 내 열차표를 가지고 역으로 가서 뭔가 해왔다.

그 사이에 차장은 베갯잇과 깔 이불을 감쌀 하얀 천 두 장과 수건 한 장을 줬다. 탑승한 사람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반에서 베개를 꺼내서 베갯잇을 씌우고 이불을 깔고 천 두 장을 감싼다. 그리고 덮을 이불을 꺼내더니 하나둘 잠들었다. 나도 눈치껏 그렇게 했다. 아무 설명도 없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상했다. 초등학교에서 기차 타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공영방송에서 캠페인을 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좌석 번호를 보고 자리를 잘 찾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2층 침대가 놓인 칸에 탔다. 예매할 때 위 칸은 불편하다는 소리를 주워듣고 아래 칸을 예매해서 아래 자리 잡았지만 열차에 표시된 좌석 번호를 가지고는 어디가 1층인지 알기 힘들다. 2층 침대 좌석 번호가 1층 침대 좌석 번호 밑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난 사실 아직도 내가 내 자리를 잘 찾았는지 모르겠다. 예매할 때 실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열차가 출발하고 내 위에 아무도 타지 않은 것이 묘하게 불안했다. 내 자리는 분명 위 칸과 아래 칸 둘 중 하나인데 그 중 한 자리가 차 있으면 내 자리는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그런데 둘 다 비어있으니 혹시 내가 다른 자리에 앉았을 가능성이 남게 된다. 반대로 아래 칸이 원래 내 자리이지만 누군가 누워있었으면 난 한두 번 내 자리 아니냐고 해보고 상대가 비키지 않으면 예매를 잘 못했다고 생각하고 불편한 위 칸에 누웠을 것이다.

위 칸이 비어있다는 것은 여지가 있다거나 모르는 것이 있다거나 틈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알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담장에 내가 모르는 구멍이 있어서 누군가 오간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 그런데 틈이 하나도 없어서 밖에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곧 질식하고 만다. 빽빽하지 않고 빈 곳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내가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열차 안에서 볼 것을 모두 알 수 있다면 굳이 열차를 탈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면 열차를 탈 수도 없다. 무엇을 하든 미리 완전히 알 수 없으니 적당히 알고 불안하게 뭔가 해보고 실수하면 고쳐나갈 수밖에 없고 생각했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위에 사람이 탔다. 많아 봐야 1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능숙하게 침대를 만들고 곧 누웠다. 나도 쓸데없는 고민을 끄고 잠들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