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서 내릴 때까지 눈에 익지 않던 장면이 하나 있다. 1층 침대에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 2층에 자리 잡은 사람이 툭 내려와서 탁자를 이용하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볼 때마다 식겁 놀라곤 했다.
열차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평행하게 놓인 2층 침대는 창가 쪽에 탁자 하나가 있다. 머리를 복도로 하고 자지 않으니 탁자 쪽에 머리가 놓일 수밖에 없는데 침대는 무척이나 좁아서 사람이 똑바로 누워있으면 편하게 엉덩이 놓을 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1층 사람이 옆으로 누워주면 그때야 좀 편하게 걸쳐 앉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1층 사람이 옆으로 누워있던 똑바로 누워있던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1층 침대를 의자처럼 쓴다. 실례한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은 필요하지 않다. 하긴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비슷하다. 화장실 앞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침대에서 보이이니 내가 방금 들어온 것을 알 텐데도 어떤 사람은 화장실이 급하면 노크 세례를 하거나 헛기침을 엄청 해대곤 한다. 더 생각해보니 건널목 차단기도 참 배려가 없다. 땅에서 차단기가 올라오는데 다 올라오면 직각 삼각형이 튀어나온 형태인데 문제는 사선 방향이 철로를 봐서 도로 쪽으로는 벽이 생긴다. 만약 실수라도 하면 차가 박살 나는 형태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지 이들 사이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뭐 잘 못되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로씨아 사람들은 마음이 시베리아만큼 넓어서 모르는 사람이 자는데 엉덩이를 얼굴에 들이밀거나 화장실 앞에서 채근대도 별 신경 안 쓰일 수도 있다. 실수해서 열차에 탄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는 그냥 운전자 혼자 다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무례한 짓을 하면 칼부림도 나니 서로서로 해끼치지 않고 잘 살기위해 여러 예절을 만들기도 한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자신들에게 해가 될 일이 없는데 예절을 만들어서 지키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그렇다고 내가 본 러시아 사람들이 인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자고 있는데 경찰이 격하게 깨워서 순간 겁먹은 적이 있었다. 행색이 누추해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건가 생각하고 주섬주섬 여권을 꺼내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러시아말로고 격하게 뭐라고 한다. 잘 못 알아듣는 눈치이니 더 격하게 러시아 말로 뭐라고 하다가 끝내 경찰이 답답했는지 침대에 떨어진 휴대폰을 손에 쥐여준 기억이 있다. 아 물론 그 뒤로도 복도 넘어 사람은 러시아어로 끊임없이 뭐라고 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것처럼 쿨하게 음식을 권하기도 하고 열차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을 때면 나는 알아 듣든 말든 러시아어로 격하게 말하면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성격 같으면 열차 안이 견딜 수 없으면 진작 뛰쳐나왔을 텐데 시베리아 위에서 뛰쳐나와 봐야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기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가는 방법뿐이다. 운이 좋아서 딱 공항 있는 역에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면 말이 좋아야 가까운 공항이지 하루 이틀 기차 타고 가야 한다. 나는 러시아의 정말 작은 부분을 경험한 것이니 다른 열차를 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