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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 철도 위에서 먹었던 것들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올라 삼 일째가 되니 나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탔다. 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톡은 바로 북한 위인데 그동안 온통 백인만 보인 것은 좀 이상하다. 그런데 이 온통 백인인 열차 안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인 “도시락”이 흥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다.

“도시락”은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맛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내가 본 것만 여섯 가지 맛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 것이 해외에서 흥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홍보 문구로 받아들였다. 뭐 아프리카에 자전거 바퀴 수출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자동차 타이어라던가 뉴욕에 억지로 분점 하나 차려놓고 뉴요커도 즐기는 커피라고 하는 광고하는 느낌? 그런데 “도시락”은 내가 탄 칸에서는 정말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도 열차에 타기 전에 검색을 좀 해보았고 열차 안에 온수기가 있다는 사실과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여섯 개 샀다. “도시락” 안에는 포크가 들어있어서 식기를 씻어야 하는 귀찮음도 덜 수 있었다. 열차에 탄 사람들은 “도시락” 용기와 비슷한 뚜껑 있는 용기를 가지고 타곤 했다. 그러면 “도시락”의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만 챙기면 되기에 부피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뚜껑을 덮으면 온수기에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뜨거운 물을 흘릴 위험도 덜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도시락” 말고 놀라운 음식이 하나 더 있다. 컵라면처럼 용기에 담긴 감자 퓨레인데 이것도 여러 가지 맛이 있다. 은박지로 된 뚜껑을 열면 가루만 들어있는데 여기에 물을 부르면 찐 감자 하나를 으깨서 양념을 곁들인 것처럼 된다. 맛도 적당히 있고 식감도 정말 감자를 간 것 같다. “도시락”만 먹었으면 얼마 안 가 열차에서 뛰어내렸을 텐데 이 감자 퓨레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식당 칸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빵을 파는 아주머니도 다니고 역마다 매점도 있긴 하지만……

중간중간 음식을 사먹거나 얻어먹기도 했지만 일주일 동안 인스턴트가 주식이었다. 하루에 반 년 씩 수명이 준 느낌이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다음에 간다면 좀 제대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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