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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아크로폴리스박물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다음날 가려고 했는데 또 욕심부렸다. 박물관 근처 대로에는 할아버지들이 생각지도 못한 삐끼질을 한다. 이 동네에서 나한테 말 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처음에는 적당히 바쁘다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는 너무 궁금한 거다. 왜 자꾸 마을 거는지. 그냥 심심한 할아버지들이 시간 죽이려고 말 거는 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집중했지. 예를 배운 청년이니까 어른이 하는 말에 집중해야지. 처음에는 일상의 대화로 시작한다. 뭐 한국의 지방 도시 이름을 나열하면서 친근감을 높이기도 하고. 그런데 결국 기승전 호객행위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유적 위에 떠 있다. 파면 유적이 나올 거니 당연할 거다. 유적 손상을 최소화하려고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러시아에서부터 그랬지만 이번 여행은 사실 눈 호강인 거 같다. 여기에도 참 잘 만들어진 물건들이 많다. 그냥 흰색의 대리석 조각이 아니라 거기에 덧칠한 색을 복원한 조형도 볼만했다. 크게 관심 없으면 그리스 조각상은 그냥 대리석이 그대로드러나 있는 보습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알았다. 다시 말하면 공부를 안 하고 가서 즐거움 하나를 찾은 거긴 하다.
박물관의 동선도 흥미롭다. 박물관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 있고 맨 위층에 아크로폴리스에 관련된 전시가 있는데 여기까지 올라가는 중간에는 아크로폴리스 반대편이 보인다. 맨 위층은 유리 벽 안에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규모의 내실이 있다. 안에는 아크로폴리스에 관한 이런저런 전시물들과 아크로폴리스 조소에 관한 영상이 있다. 이 내실을 나가면 내실을 둘러서 아크로폴리스 내부 조소가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모형이고 몇몇은 되찾은 거다. 모형에는 영국 박물관에 소재해 있다는 표시가 있다. 그렇게 내실을 돌아 나오면 이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며 전시를 보는 동안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게 된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영국 박물관에 들러 아크로폴리스 내부 조소를 봤다. 영국 박물관에 에테네 유물이 있는 건 우리나라 문화제가 일본에 가 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 찝찝했다. 더 많은 설명이 되어있기도 했다. 풍부한 오디오 가이드도 덤으로 있다. 심지어 한국어다. 물론 이건 대한한공 덕이긴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고 깊은 이해가 있을 거란 생각이 꼭 옳지는 않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렇다고 제국주의 시대 문화재 약탈을 찬성한다는 건 아니고) 또 한편으론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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