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나오는 건 개뿔. 환승 수속하고 겁내 뛰어갔는데 비행기는 이미 문 닫고 갔다. 솔직히 환승 수속 할 때만 해도 늦었다는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아타튀르크 공항은 너무 복잡하고 불친절하다. 게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문은 닫혔다. 이런 공항은 그냥 부수고 새로 짓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정말 신 청사 공사가 완료되면 이 공항은 폐쇄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인 일이다.
생각대로 비행기 놓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름이름 있는 항공사니 알아서 해줄 거라고 기대하고 항공사를 찾아갔다. 다음 항공권을 받고 숙소도 안내받았다. 숙소는 환승 구역에 있는 게 아니라 이스탄불 시내에 있다. 한국 여권은 터키에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데 나랑 비슷한 처지의 미국인 노부부가 입국심사대에서 비자가 없어서 입국하지 못하고 비자 자판기로 가는 걸 봤다. 비자 비용을 아껴준 나라가 고마운 순간이었다.
면세 구역을 넘어 도착 층 한쪽 구석에 터키 항공 부스가 있다. 터키 항공은 터키에서 몇 시간 이상 스톱오버 하면 호텔이나 시내 관광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나는 원치 않게 이 혜택을 받게 된 거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한 무더기의 사람이 출발했고 나는 좀 더 기다리다 제공된 버스에 올랐다.
개문발차 참 오랜만에 생각한 단어다. 어렸을 땐 저게 뭔 소린가 했다. 문 열고 차 출발하지 말란 소리다. 공항을 나와서 버스를 타자마자 터키는 우리나라와 묘하게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라디오에서는 이슬람 사원에 어울릴 법한 성스런 노래가 나오는데 버스 기사는 문을 열고 출발한다. 양보 없는 도로 사정도 비슷했다. (러시아에서도 격한 운전을 많이 봤는데 느낌이 좀 달랐다.) 골목 느낌도 그렇고.
아 뭐 일단 이렇게 된 거 하기아 소피아를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뭘 알고 가고 싶은 것은 아니고 피렌체 대성당 이전에 꽤 오랫동안 인간이 만든 가장 큰 돔이라는 소리를 강의 시간에 들은 기억이 나서 나서다. 그런데 마침 얼마 전 큰 테러가 있었다는 걱정 스런 소리를 듣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 가자니 도로가 막혀 비행기 시간이 간당간당하기도 했고 허리도 아프고 유심도 없고 환전도 안 했고 카드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뭐 이런 변명을 하면서 욕조에 몸 담그고 쉬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기아 소피아가 참 마음에 걸렸다. 괜히 갔다가 여차저차 일이 꼬였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는 욕심 안 부리길 잘했지만 또 언제 터키 오냐는 생각에서는 아쉬웠다. 그런데 아쉬움과 다행스러운 느낌이 동시에 드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쉬움만 있었으면 내가 너무 잃은 거고 다행이란 생각만 들면 내가 전부 가져온 거잖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스탄불에 왔으니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또 올 거라는 기대를 품고 공항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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