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비토스 언덕은 아테네와 작별하기 좋은 곳이다. 내가 지금까지 돌아다녔던 곳이 한눈에 다 보인다. 멀리 바다도 보이는데 못 가봐서 아쉬웠다. 다음에는 정신 차리고 잘 찾아보고 다녀야겠다. 북악산 팔각정에 올라서 서울을 바라보면 여기저기 불 켜진 사무실을 보며 뭔가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테네는 그런 느낌과 거리가 멀다. (노르웨이와 다르게 여유로운 동네다.) 여유롭다기보다는 느긋하다. 모스크바에서 사서 먹지 못한 과자와 올라오면서 산 콜라를 마시면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아테네에 왔다. 중학생 때 영어 공부를 빙자해서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샀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엠피쓰리를 살 때 즈음 과학 선생님은 연수차 아테네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줬다. 한마디로 어설픈 나라라고 했다. 아주 어설픈 나라라고. 교실도 우리나라가 훨씬 시설이 좋다고 했다. 교사당 학생 수가 적은 것만 나은 점이라 꼽았다. 아주 짧게 스친 인상뿐이지만 어설프단 표현을 왜 사용했는지 살짝 이해된다. 느긋한 느낌을 어설프다고 말한 거다. 한 평이라도 더 찾아 먹고 일 원이라도 더 쥐어짜려는 나사 꽉 조여진 긴장이 덜한 건 분명 프로답지 못한거다. 왜 조언이나 충고는 결국 정신 똑바로 차리라거나 정신 꽉 잡으라는 말로 귀결되기도 하니까. 이래저래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로 제시되는 우리 사회잖나. 버스 기사가 한 명 한 명 돈 내는 걸 확인하는 나라에 살다가 승차권도 안 보여주고 버스를 타면 좀 아마추어 같다고 느낄 거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해까지 지니 으슬으슬해졌다. 새벽 비행기이고 공항 버스도 24시간 운행하니 시간이 널널하나 슬슬 걸어 내려왔다. 유난히 사이렌 소리가 많이 들렸고 골목은 러시아 못지않게 밟고 다니는 디젤 택시로 시끄러웠다. 횡단보도는 초록 불 주는 시간이 영 애매하다. 건너는 길이가 아주 짧은데 하염없이 긴가 하면 건너려면 한 참 남았는데 초록 불이 꺼지려 하기도 한다. 공항으로 가는 길의 제한 속도가 120km/h인 점이 생소했다. 또 이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같이 달리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다 보호대를 하고 다니긴 한다만……. 이렇게 또 한 도시와 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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