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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아테네 #2

아테네 시내로 향하는 공항 버스를 타고 잤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온 동네에서 자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여튼 내렸다. 늦은 시간인데 비까지 내리니 꽤 으스스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나랑 같은 신발은 신은 발을 봤다. 그런데 그 발이 계속 날 쫓아오는 거다. 점점 정류장에서 멀어질수록 인적이 드물어지는데도 계속 쫓아 온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왜 저 사람은 자꾸 날 쫓아오나 그러면서 말이다. 어느
정도 가서 따라오지 않아서 안심했는데 결국 숙소 복도에서 만났다. 그 뒤로 별일이 있지는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서 러시아에서 남은 빵으로 아침을 했다. 이걸 다 먹어 치워야 그리스에서 뭔가 먹을 걸 살 수 있다. 예전에 다녀온 스페인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장을 보면 먹을 만한 것들이 적당한 가격이라는 인상이 남아있다.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그리스도 스페인처럼 남쪽이니 스페인 같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적어도 러시아처럼 매대가 비어 있거나 플라스틱 같은 빵을 먹진 않을 거라 봤다.
장은 오후에 들어오면서 보기로 하고 어디 갈지 빨리 루트를 짰다. 아테네에 왔잖나! 소크라테스 살던 그곳!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나를 자퇴까지 하고 철학과로 다시 가게 만든 사람들! 이미 다 죽었고 폐허 뿐이지만 그래도! 굳이 저 사람들이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도 아크로폴리스니 뭐 아테네니 이런 건 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글로만 보던 곳에 바로 온 거다.
굳이 올 필요는 없으나 자주 들어서 한 번 와야 될 것 같은 장소라고 설명하면 될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건데 남들이 다 하면 괜히 관심 가기도 하잖나? 무슨 상을 받았다는 둥 전문가의 평가가 좋다는 둥 그러면 괜히 좋은 거 같고 그러잖나? 특히 내가 평소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추천하면 괜히 한 번 더 찾아보게 되는 것처럼 아테네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한 곳이다.
굳이 직접 오지 않아도 아테네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긴 하다. 요즘은 사진도 많고 심지어 가상현실로도 체험할 수 있으니까. 아테네에 오지 않아서 이해 못 할 내용이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공부한 건 아니다. 그냥 책 한 권 더 살펴본 노력이랑 같은 선상이다. 가만히 있지 않고 뭔가 꼼지락거렸다는 생각. 물론 이게 아침에 아테네를 걸을 때 설레던 마음을 다 설명하진 못한다.
아침에 아테네 골목을 걸어가니 스페인 냄새가 났다고 적혀있다. 정확히 냄새가 기억나진 않는다. 창밖에 해를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덧창이 있다는 점으로 무리하게 설명해 볼 수는 있지만 그냥 아무리 새로운 것을 봐도 내가 아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습관 때문일 거다. 여튼 골목을 걷다가 길모퉁이를 도니 아크로폴리스가 보였다. 그때의 느낌을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우연찮게 얻어걸린 아테네 여행이지만 정말 잘 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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