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열차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위층 사람의 발이 조심스럽게 내려오며 바닥을 찾았습니다. 저도 재빠르게 잠자리를 돌돌 말아 그의 침대에 얹고 제가 누워있던 침대의 가운데 부분을 들어 돌려서 탁자를 만들었습니다. 위층 사람은 자신의 더플백에서 먹을 것들을 꺼냈지요. 빵은 지난 역에 정차할 때 새로 산 건데 역시나 소꿉놀이에 있는 플라스틱 빵 맛이 날 게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통에 담아온 요리가 상했다는 겁니다.
이미 얻어먹은 게 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기 때문에 제 감자 퓌레를 그와 나눈 건 아닙니다. 사과 소년도 위층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음식을 저에게 나눴습니다. 만약 사과 소년이 위층 사람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제가 음식을 나누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사과 소년은 자신을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도움받는 걸 꺼리거나 도움받은 사실을 좋게 생각하지 못할 거라고 저에게 변명하면서 아침에 먹을 감자 퓌레를 아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사과 소년은 어느 정도 배워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 제가 사는 문화에 대한 관심까지 있었던 것에 반해 위층 사람은 말이 통하기는커녕 음식도 재차 권하지 않고 쿨하게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생각을 더 명확하게 소통할 가능성이 높은 사과 소년이 아니라 원시적인 의사소통밖에 할 수 없는 위층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니 저는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거나 좋은 매너를 지닌 사람이라도 모든 소통에 실패할지 모르고 반대로 말이 통하지 않고 저와 전혀 다른 세상을 산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