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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나와 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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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울란우데우 역
 

모스크바 시간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지 3일이 지났습니다. 몽골 국경과 가까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저와 비슷한 얼굴인데 러시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어요. 예전에 중국에 갔을 때도 제가 입다 물고 있으면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중국은 같은 동양이니 제가 중국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양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러시아에서 한국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보니 정말 이상했습니다.

한국 사람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이 러시아어를 하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긴 이유는 저와 생김새가 같다고 한국어를 하고 한국인일 거라는 부당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국적과 언어 그리고 유전적 유사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 안에서 여러 국어가 사용되기도 하고 여러 혈통이 같은 나라에서 살기도 합니다. 심지어 여러 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지요? 단지 우리나라 사람처럼 생겼다고 우리말을 할 거라고 기대한 일을 돌아보니 제가 얼마나 단일 민족 국가에 집착한 교육을 받았는지 실감했습니다.

해가 지고 열차는 울란우데우(울란데우) 역에 도착했습니다. 생김새로는 정말 한국인 같은 연인이 열차에 올랐습니다. 둘은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어요. 그나마 덜 긴장한 연인에게 다른 연인이 기댄 모습으로 객실에 들어왔지요. 다른 연인에게 버팀이 되어 주던 사람은 자리를 찾고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차에 있는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둘은 이내 잠이 들었지요.

이들이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이 열차에서 내려 목적지에 잘 도착했을지 궁금합니다. 이 열차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마음 쓰이지 않았는데 여행 다녀온 지금까지 왜 이들이 생각나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비슷한 생김새여서 눈이 더 가고 마음 쓰였던 점이 작용한 건 분명합니다. 비슷한 것에 마음이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열차 안에서 본 연인이 이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지만 앞서 연인처럼 긴장해 있는 이들도 있었고 여유롭게 한 침대에 꼭 붙어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아이를 데리고 탄 이들도 있었지요. 어렸을 때 애도 낳고 그럴 수도 있다만 어린 부부가 많다는 건 눈에 띄었습니다. 스물이면 성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디 대학 신입생이 자신과 상대를 책임질 어른 취급 받던가요? 우리나라에서라면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한다면 몹시 이상한 일인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 보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일주일이 걸립니다. 삼일이면 여정의 중반이고 열차가 익숙해질 시간입니다. 그런데 돌연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해가 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열차가 바이칼 호를 지나가며 이르쿠츠크로 향하던 밤에 겪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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