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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나와 다른 위층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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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돌돌 말아 놓은 이부자리 – 어떤 사람들은 낮에 이부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빨간 이불로 요를 감싸놓기도 합니다.

저는 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니 열차에 얼마 동안은 때에 맞춰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테이블을 만들어 꼿꼿이 앉아 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위에 사람이 있으면 낮에 제 침대를 의자로 쓰니 이불을 걷고 테이블을 만들 수밖에 없었지요. 분명 처음에는 이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누워서 세 끼를 먹었습니다. 침대 방향이 열차 진행 방향과 같으니 편안하게 누워서 바깥 풍경을 보며 졸리면 자고 대충 밥때가 되었다고 느껴지면 먹은 거지요.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좁은 공간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러시아는 중국처럼 단일 시간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 계속 시간이 바뀌는 것도 때에 맞춰 생활하기 어렵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시간이 빨라지니 밥을 먹고 시계를 보면 또 밥때가 되는 정신없는 상황이 벌어지지요. 그렇다고 마냥 먹고 자기만 한 건 아닙니다. 책도 읽었지요. 유길준의 『서유견문』 을 전자책으로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쓴 『상대성이론』 을 종이책으로 챙겨갔어요. 전자책은 배터리가 부족해서 조금씩밖에 볼 수 없었으니 결국 『상대성이론』 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처음 위층에 탄 사람이 내리고 아직 제가 세 끼를 누워서 먹지 않을 때 다시 위에 사람이 탔습니다. 그는 10대나 되어 보였는데 처음 절 본 얼굴에는 심한 낭패감이 보였지요. 그는 다른 승객이라면 타자마자 했을 잠자리 만들기도 잊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제가 이불을 개 놓은 맞은편 자리에 걸터앉았습니다. 제가 그의 등 뒤에 있는 이불을 위 칸으로 올리고 자리를 넓게 마련해줬지만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습니다. 하긴 어딘가로 떠나는 일은 긴장되는 일인데 같이 테이블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 이 열차에서 제일 생경스러운 저이니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느껴집니다.

그는 얼마 지나 정신을 차리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그리곤 정말 단 한 번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반나절을 누워 있어서 죽었나 확인하고 싶었을 정도였지요. 복도 건너 마주 보는 두 개의 침대에는 모두 러시아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일층에는 러시아 아짐이 타고 있었지요. 그는 마침내 한 끼를 먹으려 “도시락”을 까서는 그 아짐 옆 테이블로 갔습니다. 복도 건너 아짐도 그와는 생판 모르는 사이일 텐데 저와 그의 먼 거리를 놓고 보니 그와 그 아짐의 거리가 마치 모자 관계처럼 가까워 보였습니다.

같은 피부색을 지나고 같은 나라 안에 살아도 이해하지 못할 신기한 사람 천지인데 다른 문화라면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다름에 대해 이상하게 느끼거나 신기하게 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다른데 다 덮어두고 우린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게 쉽게 동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요? 이상하거나 열등하게 보이는 걸 애써 이성으로 억압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 건 병적 증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저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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