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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스케치 1


[그림 25] 시베리아 횡단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10초)

아침 창밖으로 첫날과 비슷한 풍경이 지나갑니다. 그나마 나무 종류가 조금 달라지긴 했습니다. 보이는 건물들도 소련의 영향인지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밖과 다르게 열차 안은 따듯합니다. 옆자리에서는 할배가 허리 아픈 할매를 치료하기 위해 눕혀 놓고 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먹을 걸 가득 싼 봉지도 가벼워졌고 알파벳을 잘못 읽고 산 탄산수는 이제 어느 정도 맹물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말은 안 통하지만 이제 이 공간이 낯설지 않습니다.

낮에 콘센트 때문에 승객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오갔습니다. 열차에서 전기 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저는 눈치껏 충전기를 꼽았는데 누군가 제 충전기를 빼고 자기 충전기를 꼽아놔서 많이 충전할 수 없었습니다. 또 콘센트에 전기가 들어올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마냥 꼽아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콘센트만 쳐다보고 있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어느 정도 충전하곤 충전에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녁에 열차는 이란스카야 역에서 22분 동안 멈췄습니다. 정말 짧게는 1분만 멈추고 길어야 5분이니 22분이면 정말 오래 서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거나 먹을 걸 사 옵니다. 차장은 흔히 말하는 빠루, 그러니까 노루발을 들고 열차 차륜을 툭툭 쳐서 점검하고 도끼로 얼음을 제거합니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나가기에 저도 따라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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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6] 끽연 중인 승객들과 열차를 점검하는 역무원
열차가 길어서인지 승차장에는 중간중간 여러 개의 매점이 있습니다. 매점은 물건을 가지고 계산하는 방식은 아니고 점원에게 원하는 물건을 말해주면 점원이 가져주는 방식입니다. 저는 스프라이트와 고로케 같은 빵을 샀지요. 빵을 전자렌지에 돌려주는 친절까지 경험했습니다. 제가 산 빵의 소는 고로케와 비슷했는데 고기가 생선이 섞여 있어서 비린내가 났습니다. 그래도 인스턴트가 아닌 따듯한 빵이어서 만족했습니다. 사실 열차 안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빵을 파는 사람이 돌아다닙니다. 그분은 후덕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는데 꼭 모자 달린 두껍고 긴 스웨터를 입고 손토시를 한 차림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 먹지 않았기에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여튼 따듯한 빵뿐 아니라 오랜만에 서울에서도 파는 음료까지 곁들인 괜찮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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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이란스카야 역에서 사 먹은 빵
저녁 시간이 되니 사람들은 “도시락”이나 찻잔에 물을 붓기 위해 분주해졌다. 열차 앞쪽에 있는 온수기는 생긴 것도 강력한 증기기관처럼 몹시 거칠게 보이는데 물 역시 엄청 뜨겁게 나옵니다. 사람들은 주석 손잡이가 달린 유리잔을 차장에게 빌려 차를 마시는데 보온병에 담아 놓으면 식지 않아서 마실 수 없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문제는 뚜껑이 없어서 그걸 들고 자리로 갈 때마다 불안하단 점입니다. 만약 쏟으면 1층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바로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고 되려 제가 차를 만들다 손을 데고 말았습니다.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왁지자껄합니다. 추운 시베리아 위를 달리는 따듯한 열차 안에서 시끄러운 수다를 듣는 건 불쾌하기보단 평화롭습니다. 나이 든 양반이 조곤조곤하게 대화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밖은 무엇 하나 살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한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뛰어다니는 어른들까지 보기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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