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25] 시베리아 횡단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10초)
아침 창밖으로 첫날과 비슷한 풍경이 지나갑니다. 그나마 나무 종류가 조금 달라지긴 했습니다. 보이는 건물들도 소련의 영향인지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밖과 다르게 열차 안은 따듯합니다. 옆자리에서는 할배가 허리 아픈 할매를 치료하기 위해 눕혀 놓고 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먹을 걸 가득 싼 봉지도 가벼워졌고 알파벳을 잘못 읽고 산 탄산수는 이제 어느 정도 맹물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말은 안 통하지만 이제 이 공간이 낯설지 않습니다.
낮에 콘센트 때문에 승객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오갔습니다. 열차에서 전기 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저는 눈치껏 충전기를 꼽았는데 누군가 제 충전기를 빼고 자기 충전기를 꼽아놔서 많이 충전할 수 없었습니다. 또 콘센트에 전기가 들어올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마냥 꼽아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콘센트만 쳐다보고 있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어느 정도 충전하곤 충전에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녁에 열차는 이란스카야 역에서 22분 동안 멈췄습니다. 정말 짧게는 1분만 멈추고 길어야 5분이니 22분이면 정말 오래 서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거나 먹을 걸 사 옵니다. 차장은 흔히 말하는 빠루, 그러니까 노루발을 들고 열차 차륜을 툭툭 쳐서 점검하고 도끼로 얼음을 제거합니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나가기에 저도 따라나섰습니다.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왁지자껄합니다. 추운 시베리아 위를 달리는 따듯한 열차 안에서 시끄러운 수다를 듣는 건 불쾌하기보단 평화롭습니다. 나이 든 양반이 조곤조곤하게 대화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밖은 무엇 하나 살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한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뛰어다니는 어른들까지 보기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