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출발하고 이틀 정도는 저랑 비슷한 생김새를 한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과 중국 근처인데 온통 백인만 보이는 건 좀 이상한 일이지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온통 백인인 이 열차 안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인 “도시락”이 흥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도시락”은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맛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제가 본 것만 여섯 가지 맛이 있습니다.
“도시락”이 러시아에서 잘 팔린단 말은 한국에서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것이 해외에서 흥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일단 홍보 문구는 아닌지 의심해 봅니다. 아프리카에 자전거 바퀴 수출한 걸 가지고 세계인이 구입하는 타이어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 타이어의 우수성을 설명하거나 뉴욕에 억지로 분점 하나 차려 놓고 뉴요커도 즐기는 커피를 판다고 하는 광고는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상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도시락”은 제가 탄 칸에서는 정말 쉽게 볼 수 있었다.
열차에 타기 전에 검색을 해보았고 열차 안에 온수기가 있다는 사실과 먹을 게 마땅치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여섯 개 샀습니다. “도시락” 안에는 포크가 들어 있어서 식기를 씻어야 하는 귀찮음도 덜 수 있었지요. 열차에 탄 사람들은 “도시락” 용기와 용량이 비슷하면서 뚜껑 있는 용기를 가지고 타곤 했습니다. 그러면 “도시락”의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만 챙기면 되기에 짐을 줄일 수 있어요. 그리고 뚜껑을 덮으면 온수기에서 물을 붓고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뜨거운 국물을 흘릴 위험도 덜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도시락” 말고 놀라운 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컵라면처럼 용기에 담긴 감자 퓌레인데 이것도 여러 가지 맛이 있어요. 은박지로 된 뚜껑을 열면 가루만 들어 있는데 여기에 물을 부으면 찐 감자 하나를 으깨서 양념을 곁들인 것처럼 됩니다. 맛도 적당히 있고 식감도 정말 감자를 간 것 같습니다. “도시락”만 계속 먹었으면 얼마 안 가 열차에서 뛰어내렸을 텐데 이 감자 퓌레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지요.

물론 열차에는 식당 칸이 있습니다. 또 아침저녁으로 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다니고 역마다 매점도 있지요. 저는 이런 곳에서 중간중간 음식을 사 먹거나 인심 좋은 사람이 주는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주식은 인스턴트였어요. 먹을 것을 잘 먹지 못하니 수명이 하루에 반년씩 준 느낌입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요. 다음에 간다면 좀 제대로 먹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