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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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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 노보시비르스크 역
노보시비르스크라는 큰 도시를 지나던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습니다. 사실 제가 탄 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모스크바까지 한 번에 간 사람은 저와 두 차장뿐입니다. 모스크바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많은 사람이 오갔지만 한두 명이 내리고 다시 자리가 채워지고 하는 식이었기에 객실 안에는 늘 눈에 익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눈에 익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다시 채웠습니다. 열차를 바꿔탄 기분이었습니다.

제 자리에서 복도 넘어 열차 진행 방향과 등진 일층 자리에 있던 인상 선한 사람도 노보시비르스크 전에 있는 어떤 역에서 내렸습니다. 사실 인상만 선한 건 아니고 저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열차에 탄 지 3일이 지났을 때 열차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제 침대를 적신 일이 있습니다. 이제 하다못해 열차 천장이 빵구가 났다고 황당해하던 때에 제 자리에서 대각선에 있던 사람이 차장을 불러줬지요. 차장은 이층 침대에 골판지를 올리더니 복도 쪽으로 살짝 빼고 그 위에 수건을 놓아 떨어지는 물방울을 막아줬습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그 뒤로 별문제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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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9]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에 대한 차장의 임시방편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전에 차장은 돌아다니며 내려야 할 사람들에게 도착지가 다 왔음을 알려줍니다. 인상 선한 사람은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전에 일층 침대 상판을 들어 짐을 꺼냈습니다. 그 뒤에 짐 중에 있던 두꺼운 모피를 입고 테이블에 놓았던 먹을 것들을 정리했어요. 마지막으로 차장에게 받은 침구를 반납하고 요와 이불을 정리했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짐 싸는 것도 도와주고 배웅도 해주더군요.

열차가 멈추자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은 절 도와준 사람의 짐을 기꺼이 밖으로 들어줬습니다. 창밖으로 보면 탑승구 위치도 표시되지 않은 승차장에 많은 사람이 서 있습니다. 많은 짐을 열차에서 힘겹게 내린 뒤에 밖이 춥지도 않은지 잠시 멈춰 서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쿨하게 갈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국제공항 입국장이나 출국장처럼 격하게 반기거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열차가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고 어떤 역에 멈추기 전에 많은 사람이 떠날 채비로 분주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사람을 볼 가능성이 높아지는 일이지요. 그리고 여행의 목적이 새로움을 겪는 데도 있다는 점에서 여러 사람이 오가는 건 괜찮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려서인지 유독 해어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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