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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오류 발견

나는 어제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올라 4일째에 견과류 캔을 버리지 않고 머리를 감았고 배터터리를 더 이상 충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일기를 더 살펴보니 터리를 충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5일째이고 머리를 감은 것은 6일 째다. 날짜를 모호하게 써놓은 것도 아니고 4일 째라고 명확히 써놓고 5일과 6일째에 있던 일을 적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일기를 보고 기억에 의존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으니 적던 것을 멈추고 지금까지 쓴 것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단 여행기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지금까지 배우기로는 다시 살펴보면서 단어 하나라도 더 정확히 고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정하고 일정 분량을 쓰는 방식을 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도 꽤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글을 거의 끝까지 쓰다 그만둔 것과 엉성하게라도 마무리 지은 것은 단지 글 몇 자를 덜 적고 더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일이 완성해서 산출물이 나오면 그간 과정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일 수 있는지 같은 생각을 위에서 굽어볼 수 있다. 그러니 불쾌하지만 오류를 안고 가야겠다.
사실 내가 뭘 알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나 싶기도 하다. 뭘 다 알고 하려면 아무것도 못 하기 십상이다. 페인트의 성분이나 흑심의 분자 크기가 내 폐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을 알고 연필을 쥐진 않잖나? 그리고 정말 몰라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린 그래서 해보면 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안 하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으니 훈수 두는 사람에게 말이 쉽다고 성내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기억이 썩 정확하지 못했다는 것과 관련된다. 내 기억은 불완한데 내가 기록한 정보 또한 원본임을 확인할 길은 없다. 특히 디지털 자료는 누가 몰래 바꿔놓으면 티도 나지 않는다. 뭐 다른 사람들과 말을 맞춰보면 되지만 그 사람들의 기록도 변조되었을 때 내 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특히 지금처럼 컴퓨팅 성능이 발전한다면 더 많은 기록을 변조할 수 있게 된다. 뭐 그에 맞춰 변조해야 할 정보들이 많아지기도 할 것이니 사실과 변조된 기록 사이에 간극은 지금처럼 유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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