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사춘기의 <나만 안되는 연애>는 지난 학기에 기말고사를 위해 늦은 밤에 들른 동네 카페에서 처음 들은 노래다. 처음 들은 노래이니 가사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만 이런 세상을 사는 것 같”다거나 “이성적인 게 참 싫다”는 가사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거리를 지나는데 새삼 가사가 들려서 찾아 들어봤다.
상대가 다정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꼭 안아줬을 거라는 가사를 생각해보면 이 노래는 연인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부모 자식 간에서 사랑에서 좋은 사회를 만들 실마리를 찾거나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남을 대하는 모델을 찾는 성인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관계에 다른 관계를 비춰서 생각하는 것이 어거지쓰는 일은 아니다.
다른 노래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유치원에서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부를 때는 오막살이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용산에는 크게 3방향으로 나가는 철길이 있다. 있었다 뜯겨나가서 사라진 철도가 더 있었다는 점과 허름한 뒷골목을 생각하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와 잘 어울리는 동네다.
기찻길 옆 오막에 사는 것이 무슨 느낌일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소음과 진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니 좋은 주거 환경은 아니다. 개발업자 입장에서는 오막을 가만히 놓아두는 것보다는 여러 개 모아서 땅을 만들고 여기에 소음방지 설비도 갖춘 큰 건물을 짓는 것이 돈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너저분한 오막을 모아서 깔끔한 빌딩을 만들면 주변도 깨끗해지고 보기도 좋아진다. 환경도 좋아지고 돈이 되는데 이성적으로 오막이 남아 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
어떤 오막은 오랫동안 그곳에 산 사람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만 소중한 것은 공공을 위해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두는 우리나라 법률을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썩 많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막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다양성을 위해서 오막을 남겨놓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실연한 사람이 자신만 그런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반대로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니 슬퍼하는 저 사람을 이해해볼 여지도 있다.
사람 목숨가지고 돈놀이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의료 시스템을 지닌 미국에도, 의사가 환자에게 사과한 것을 가지고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한 법이 있는 주들이 있다. 보상금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진심 어린 사과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의사 또한 경제 논리 때문에 하지 못한 사과를 할 수 있게 된다. 개발되어야 할 대상을 보는 방법도 좀 달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