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3부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따라야 할 것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온건한 의견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데카르트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방법서설>>을 읽기 전에 초등학생을 독자로 삼은 <<만화 데카르트 방법서설>>을 읽었다. 여기서 데카르트가 병약하게 그려진 기억이 남아서이기도 하다.
나는 난방 잘 되는 열차 안에서 시베리아를 바라봤다. 기껏해야 역에서 정차할 때 잠깐 밖에 나가거나 두꺼운 창에 맺히는 결로나 변기 아래로 보이는 철로를 보면서 시베리아를 겪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철도 위에서 열차가 멈추면 얼마 못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저 들판 위에 내가 콕 하고 떨어진다면 시베리아에 사는 다람쥐 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곳은 혹독하고 여기서 살아가는 존재는 강력해 보인다.
매서운 자연을 몰아내고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굳이 시베리아 벌판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살기 어렵다는 것은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하는데 여기서 주는 집 같은 공간이다. 공간은 사방이 막히면 별 의미가 없으니 문이 꼭 필요하다. 이곳의 문은 추운 외기를 막기 위해 무겁기도 하거니와 문 끝에 날개를 달아서 한쪽 방향으로만 열린다. 그러니까 문 여는데 힘들 뿐 아니라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곳은 살면서 꼭 필요하고 빈번히 해야하는 문열기 조차 녹녹하지 않은 동네다.
나는 좀 아쉽지만 지금까지 사는데 문제없는 것들을 개선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봤다. 문 열기 귀찮으니 자동문이 생긴 것은 참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살벌한 동네에서 이미 살고 있는 방법 말고 새로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방법이 더 좋은 삶을 줄 수 있지만 까딱 잘못해서 실수했다가는 어느새 시베리아의 일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자동문이 편하다고 설치했는데 고장 나서 안 닫히면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거다.
나는 팔자 좋게 열차 안에 있으면서 다음 목적지인 그리스를 생각했다. (그리스, 특히 아테네는 철학과 졸업생이라면 한 번쯤 가고 싶을 수밖에 없는 장소다.) 날 좋은 그리스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는 행동이 혹독한 시베리아에서 의심 없이 관습을 따르는 일보다 어렵거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나가서 좋아 보이는 새로운 해결책이 있는데 문제가 있는 기존 방법을 고수하는 것의 원인이 덜 배웠다거나 유약하거나 개을러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