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밖에서는 별로 크다는 생각을 못 해서 안을 다 보고 어디 갈지 걱정했어요. 간이 천막에서 짐 검사를 통과하고 입장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러 그레이트 코트에 들어가서 오늘 다 둘러보긴 글렀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영국 박물관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데 대한항공 덕분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도 대한항공이 협찬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어요. 중국어도 없는데 한국어가 된 기억이 납니다. 오디오 가이드를 켜면 환영 인사가 나오는데 지적 호기심에 이끌려 박물관에 왔을 거란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환영 인사가 끝나면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그레이트 코트를 설명해 줘요.
바티칸보다 살뜰히 여기저기서 잘 만들어진 걸 가져다 놓았습니다. 굳이 여행 안 다녀도 어지간한 동네 물건은 여기서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전시물이 있어요. 지금이야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를 눈요기하지만 특별히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에는 기껏해야 여행기를 읽으며 상상하거나 삽화를 보는 게 전부였을 겁니다. 그럴 때 박물관에 온다는 건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람의 여행기와 사진을 보는 거나 구글 스트릿을 통해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걸 지적 호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많은 전시물이 있지만 거대한 문을 통째로 가지고 오거나 한 공간 안에 있는 부조나 벽화를 그대로 가지고 와 전시해 놓은 곳에서 오래 서성였습니다. 아주 잘 만든 거 하나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한 물건은 여기저기 살피는 건 지루해지기 쉬운 일이지요. 작은 물건 하나에서 보는 즐거움을 찾을 때까지 살피는 건 뻑뻑한 식빵 테두리를 꾸역꾸역 먹는 기분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찬찬히 보다 보면 부드러운 가운데 부분을 즐길 수 있게 되지요. 규모가 있는 전시물은 계속해서 눈에 띄는 게 나오기에 부드러운 가운데 부분을 계속 먹는 느낌입니다. 또 크게 한 바퀴 살피고 다시 세세히 살필 때 못 보았던 게 보여 새로운 느낌도 있어요.
통째로 가지고 온 유물 중에는 파르테논 신전 부조도 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는 원래 고개를 들어서 바라봐야 하는 부조들을 여기서는 눈높이로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씁쓸하게도 아테네에서 보다 더욱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어요. 부조 속 인물부터 그 인물들이 놓인 상황까지 설명해 줍니다. 전시된 건 오래되어 풍화된 돌 뿐이지만 원래 어떻게 칠해져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서는 아테네의 반환 요구 같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어요. 취득 경로의 일부를 말해줄 뿐이지요.
영국 박물관에서 본 걸 말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어디 아프리카 국가의 장식부터 모아이상도 있고 한국 가옥의 축소 견본도 있어요. 오래된 미라부터 지금도 방영하고 있는 영국 드라마의 소품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꼼꼼히 보다 나중에는 시간에 쫓겨 서둘렀다. 다음날도 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살피고 기억에 남은 건 자세히 살피는 게 좋을 거라 여겼어요.
박물관에서 나와서 소설 속 셜록 홈스의 사무실 주소인 베이커가 221B에 왔다. 셜록 박물관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시대의 의상을 한 직원이 입장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박물관은 입장료를 내야 하기도 하고 난 셜록에 별 관심이 없어서 들어가 보지 않았어요. 줄을 서지 않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셜록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컵을 하나 샀습니다. 단순히 소설에 관한 박물관이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한 번 흘깃 보고 가는 제 입장에서는 영국 박물관의 설명도 소설이지요. 그럴듯하니까 믿는 거지 사실이 뭔지는 확인해봐야 아는 겁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우리 역사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하는데 영국 박물관이라고 다른 나라를 완벽하게 설명할 능력이 있진 않을 겁니다. 설명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살피는 측면에서는 설명이 실제 대상을 다루나 허구 속 대상을 다루나 크게 차이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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