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영문 요약:
https://daseoh.wordpress.com/2007/08/20/집에-가고-싶어/
윗글을 쓸 때 즈음 나는 입버릇처럼 “집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학교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늘 그랬는데 짜증 내는 사람이 한 명 뿐이던 걸 보면 내가 만난 사람이 적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인성은 꽤 좋은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집”을 정말 내 가정이 아니라 이상향이라고 변명하곤 했지만, 이상향을 가정에 놓는 것부터 나에게 가족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다른 한편으론 변화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안온한 가정에서 별 위험 없이 생명 유지하는 것이 차가운 밖에서 뭔가 시도하는 것보다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늘 현상 유지도 못 하는 잉여로운 내 일상이 불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일기는 늘 후회로 가득 차 있다.
한 여행길에 나보다 한 살 어린 영석이란 사람을 만났다. 그는 연세대에서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있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보려 여행에 나섰다고 했다. 길을 걷는데, 그는 지금 여행을 완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미래에 봤을 때 엄청 후회할 거라는 생각에 엄청 불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영석을 만난 여행에서 나는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과거에 매여 사나 미래에 매여 사나 지금을 살지 못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좋은 대학에 간 사람은 미래 지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왕 지금을 못 살 바에야 미래에 매여있는 게 훨씬 건설적이라고 봤다.
자아는 기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뇌에 기록된 기억을 복제하면 자아를 복제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건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지만, 어쨌든 사고나 질병으로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고 늘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온전하게 산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과거는 자아를 구성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아를 구성하는 과거를 단순하게 말하면 어떤 경험에 대한 좋고 나쁜 평가다. 나는 오로라가 마음에 든다거나 인도가 싫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영역도 그 사람이 취향을 아는 것이다. 내가 마음 쓰는 사람이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몰라도 된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행에서 만난 영석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러니까 과거를 곱씹고 후회하는 것은 달리 보면 지금 내 모습의 정합성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지금 기분이 그래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설명하는 것보단, 과거에는 어쨌는데 지금도 그랬다거나 혹은 그러지 않았으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나에 대한 더 잘 된 설명이라고 본다. 또 한편으론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 잘 사는 한 방편이라는 생각이라는 점에서 기억을 되씹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오늘 중부선 하남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가서 일기를 들춰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휴게소는 청년 창업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점포들을 젊은이들에게 내준 것 같은데, 그 큰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파는 곳이 없었다. 접시만한 괴상한 피자도 참신한 음식이지만, 고속도로 음식 하면 떠오르던 호두과자가 없는 현실을 마주하니 이미 지나간 일들이 소중하게 여겨졌서 과거를 뒤적여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