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 오른 지 4일째가 되는 저녁에 열차는 이란스카야 역에서 22분 동안 멈췄다. 정말 짧게는 1분만 멈추고 길어야 5분이니 22분이면 정말 오래 서 있는 거다. 보통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거나 먹을 것을 사온다. 차장은 흔히 말하는 빠루, 그러니까 노루발을 들고 열차 차륜을 툭툭 쳐서 점검하고 도끼로 얼음을 제거한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나가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열차가 길어서인지 승차장에서는 중간중간 여러 개의 매점이 있다. 매점은 물건을 가지고 계산하는 방식은 아니고 점원에게 원하는 물건을 말해주면 점원이 가져주는 방식이다. 나는 스프라이트와 건너 보이는 고로케 같은 빵을 샀다. 빵을 전자렌지에 돌려주는 친절까지 경험했다. 소는 고로케와 비슷했는데 고기가 생선이어서 비린내가 났다. 그래도 따듯한 빵이니 만족했다. 사실 아침저녁으로 열차 안에서도 빵을 파는 사람이 돌아다니는데 후덕한 몸집에 손 토시를 하고 모자 달린 두껍고 긴 스웨터를 입은 모습으로 돌아다니지만 아무도 사먹지 않았기에 도전하지 않았다.
사놓은 빵뿐 아니라 오랜만에 미제를 맛본 괜찮은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시간이 되니 사람들은 “도시락”이나 차에 물을 붓기 위해 분주해졌다. 열차 앞쪽에는 온수기가 있는데 생긴 것도 마치 증기기관처럼 엄청 강력해 보이는데 물 역시 엄청 뜨겁게 나온다. 사람들은 주석 손잡이가 달린 유리잔을 차장에게 빌려 차를 마시는데 보온병에 담아 놓으면 식지 않아서 마실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문제는 뚜껑이 없어서 그걸 들고 자리로 갈 때마다 불안하단 점이다. 만약 쏟으면 1층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바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고 내가 차를 만들다 손을 디고 말았다.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왁지자껄하다. 추운 시베리아 위를 달리는 따듯한 열차 안에서 시끄러운 수다를 듣는 것은 불쾌하기보단 평화롭다. 나이든 양반들의 조곤조곤한 대화 뿐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 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얼마나 평화로운가, 밖은 살벌한데. 그렇다고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뛰어다니는 어른들까지 보기 좋은 것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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