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살면서 기차를 탄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딱 네 번 타봤습니다. 그렇다고 기차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승강장이 밖으로 노출된 역에서 전철을 탄다 치면 철로가 보이는 제일 끝 쪽으로 가서 다가오는 열차 보는 걸 좋아하고 혹여 통과하는 기차가 있을 때면 즐겁습니다. 수원역같이 기차가 지나가는 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기차 타고 갈 생각을 하지요. 제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기차를 161시간 11분 동안 탄 겁니다. 이제 어디 가서 기차 못 타보았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게 되었어요.
161시간 11분 내내 어떤 한 대상과 같이 있는 게 흔한 일은 아닙니다. 결혼을 해도 온종일 사랑하는 사람과 붙어있지 못하지요. 이 시간 동안 횡단 철도 위에 몸을 두고 있으니 이 철도를 생각할 시간도 많았습니다. 열차 안에서 만났던 사람이나 사건들 혹은 화장실이나 온수기 같은 열차 일부는 철도에 비하면 너무나 작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그냥 길어요. 길이만 생각하면 비교할 인공물이 없지요. 시베리아 철도 위에서 제가 경험하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길다는 속성에 비하면 너무 작아서 같이 놓고 보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 긴 길이 동안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늘 같습니다. 간격을 늘 유지하는 두 레일이 시베리아 철도 안에 한 군대도 빠지지 않고 있어요. 만약 어딘가 빠져 있거나 레일이 같은 간격을 유지하지 못했으면 열차는 탈선했을 겁니다. 열차는 끊임없는 철로를 따라 항상 덜컹거리면서 나아가지요. 철도 위에서 저는 시점부터 종점까지 철도가 만드는 주기적인 진동을 몸으로 느꼈어요.
이 철도처럼 저도 늘 꾸준하고 싶은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책상에 앉는 일도 하루 종일 그러지 못하지요. 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스노보드 타는 게 좋아도 계속 내려오기만 할 수 없어요. 아무리 긴 슬로프도 끝나기 마련이고 체력도 버티지 못합니다. 그나마 마음가짐은 꾸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책상에 앉던 슬로프를 내려오던 마음속으로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은 늘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 위에서 일주일 동안 연속된 경험을 하니 제가 부단한 자세를 지니지 못한 건 그냥 제가 나약해서란 걸 알았습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슬로프는 끝이 나니 길게 오래 보드 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체력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일주일 동안 내려올 수 있는 슬로프가 있다는 사실을 안 거랑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제 슬로프가 짧다는 탓은 못 하고 제가 체력이 없는 탓밖에 할 수 없게 된 거지요.
늘 정리 안 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제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넘기는 사람 혹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어지러운 세상은 놓아두고 그나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자신만 들여다보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 거 같습니다. 힘들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점과 아무리 완벽한 사회라 해도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건데 앞서 이들과 구분하지 못하겠는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