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가 따듯한 난로 앞에 편안하게 앉아서 세상 모든 걸 의심했던 것처럼 저는 난방 잘 되는 열차 안에서 시베리아를 바라보았습니다. 기껏해야 역에서 정차할 때 잠깐 밖에 나가거나 두꺼운 창에 맺힌 결로나 변기 물 내릴 때 아래로 보이는 철로를 보면서 시베리아를 겪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역에 도착하기 전에 열차가 고장 나서 멈추고 난방이 고장 나면 얼마 못 살고 얼어 죽을 거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저 들판에 게임에서 캐릭터를 들어 놓는 것처럼 제가 콕 하고 떨어진다면 시베리아에 사는 다람쥐 밥이 될 거라고 보았습니다. 그만큼 이곳은 혹독하고 여기서 살아가는 존재는 강력해 보입니다.
매서운 자연을 몰아내고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건 굳이 시베리아 벌판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서 살기 어렵다는 건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지요. 의식주는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주는 집 같은 공간이에요. 공간은 사방이 막히면 별 의미가 없으니 문이 필수지요. 이곳의 문은 추운 외기를 막기 위해 무겁기도 하거니와 틈으로 새는 바람을 막으려 문 끝에 날개를 둘러서 한쪽으로만 열립니다. 문 여는데 힘들 뿐 아니라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이곳은 살면서 꼭 필요하고 빈번히 해야 하는 문 여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은 동네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좀 아쉽지만 사는데 문제없는 것들을 개선하는 걸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문 열기 귀찮으니 자동문이 생긴 건 참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살벌한 동네에서 이미 살고 있는 방법 말고 새로운 방법을 선택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방법이 더 좋은 삶을 줄 수 있지만 까딱 잘못해서 실수했다가는 어느새 시베리아 일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지요. 자동문이 편하다고 설치했는데 고장 나서 안 닫히면 서울에서는 잠시 불편한 걸 참으면 되지만 여기서는 정말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겁니다.
팔자 좋게 열차 안에 있으면서 다음 목적지인 그리스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는 우리가 흔히 철학이라고 말하는 활동의 발상지이지요. 소크라테스를 보면 철학이란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 겁니다. 시베리아를 겪으며 저는 날 좋은 그리스에서 모든 걸 의심하는 행동이 혹독한 시베리아에서 의심 없이 관습을 따르는 일보다 어렵거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가서, 좋아 보이는 새로운 해결책이 있는데 문제가 있는 기존 방법을 고수하는 원인이 덜 배웠다거나 유약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